김상겸 / 동국대 교수·헌법학

2016년 대법원 시무식에서 양승태 대법원장의 식사(式辭)가 조용한 반향을 불러오고 있다. 지난 4일 식사에서 양 대법원장은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 확보를 위해서는 공정하고 엄정한 재판을 함으로써 사법부에 주어진 책무를 제대로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법원의 분쟁 해결 기능을 강조하면서, 가장 바람직한 재판은 분쟁을 1회적으로 해결하는 재판이고, 이를 위해서는 1심 재판에 가장 역점을 둬야 한다고 1심의 강화 필요성을 천명했다. 나아가, 실타래처럼 엉켜 극심하게 다투는 분쟁을 슬기롭게 해결함으로써 법의 지배 아래 사회 통합과 평화를 이루는 것이 사법부에 부여된 새로운 중요한 책무라고 덧붙였다.

헌법에 따라 국가권력이 입법·사법·행정으로 이뤄진 삼권분립 형태로 정착하면서, 법 적용 기관으로서 사법(司法)은 국가권력의 한 축으로 기능하고 있다. 사법부를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최후의 보루라고 하는 것은, 현행 헌법질서에서 사법부가 침해된 권리를 구제하는 최후의 수단인 재판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사법부는 재판을 통해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구체적으로 보장한다. 재판청구권은 기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수단으로서, 법치국가 실현에 가장 중요한 요소다.

국민의 재판 청구권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사법기관과 소송법 등 사법 제도가 구축돼야 한다. 이를 위해 헌법은 대법원과 각급 법원으로 하는 사법부 조직에 관해 규정을 두고 있으며, 그 구체적인 내용은 법률에 위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제정된 법원조직법에는 각급 법원을 지방법원과 고등법원 등으로 나누고 있다. 법원 조직의 단계화에 따라 재판 절차도 이에 맞춰져 있다. 그래서 현행 심급 제도는 3심제를 원칙으로 한다. 그런데 3심제는 재판을 보다 신중하게 하기 위함이나, 현실에서는 사건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대다수의 사건이 3심을 거치고 있다. 이로 인해 대법원을 비롯한 상급 법원의 재판 부담이 해가 갈수록 가중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상고심을 제한하는 법률을 시행하고 있고, 최근에는 상고법원의 설치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대법관 1인당 연간 3000여 건의 상고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 이는 1심 판결이 항소심인 2심에 가서 뒤집히는 경우가 30~40%에 이를 정도로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판결이 상급심에서 바뀌게 되면 대법원까지 가 보자는 심리가 작용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양 대법원장은 1심에서 충분한 심리와 숙고를 통해 최선의 결론을 내림으로써, 항소심이 두 번째 1심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그는 심급 제도가 같은 사건의 재판을 되풀이하는 절차로 잘못 운용돼선 안 된다고도 했다.

헌법재판소는 국민이 1번 이상의 재판을 받을 수만 있다면 재판청구권이 침해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부실한 재판이 상소를 남발하게 되고, 이로 인해 상급 법원의 부담이 가중된다면 재판 절차의 비효율성을 넘어서 재판 자체가 부실해질 가능성이 있다. 이로 인한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양 대법원장의 지적처럼 1심 재판이 가장 중요하다. 2000년대 이후 공판중심주의와 형사재판에 대한 국민참여제도 도입 등 재판의 내실화를 위한 제도 개선이 계속 추진되고 있다. 이에 더해 1심 재판에 경력 법관을 배치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사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법과 제도에 기초해 공정한 재판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법관의 노력에서 더 깊게 형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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