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근 / 건국대 특임교수, 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새해 벽두부터 중국 쇼크, 유가 급락 등 글로벌 경제가 예사롭지 않다.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국제 금융 불안도 높아지는 등 삼각파도가 예상보다 훨씬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수출은 둔화를 지속하고 부실기업은 급증하고 환율은 상승해 한 달 사이 외국 투자자금이 4조 원 넘게 유출돼 코스피 1900선이 깨지는 등 이러다가는 외환위기가 다시 오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커지고 있다.

설상가상 4차 북한 핵실험으로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가세해 한국 경제는 한 치 앞을 가늠하기 힘든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서 있는 형국이다. 2008년에도 한·미 통화 스와프로 위기를 넘겼듯이 경제 여건이 이처럼 악화하고 있을 때는 한·미·일 관계 개선이 중요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4년 만에 어렵게 타결을 본 지난 12·28 한·일 위안부 협상 후폭풍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한·미·일 관계 개선을 지연시키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타결 주요 내용은 일본 정부의 책임 통감, 총리 사과, 10억 엔의 기금 출연, 그리고 이번 협상 타결은 불가역적·최종적이라는 것이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면 우리가 원하는 것만 100% 달성하기 힘든 상대가 있는 국가 간 외교 협상에서는 최선을 다한 결과라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생존 위안부 할머니들이 고령인 점을 고려해 어떻게든 생존 시에 협상을 타결해 조금이나마 한을 풀어드리고자 했다는 배경을 설명했다. 일리가 있는 부분이다.

이번 협상 타결을 계기로 이제 한·일 관계도 미래 지향적으로 나아가야 한다. 일본의 역사적 과오를 잊어버리지는 않되, 과거에 매몰돼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기에는 한국이 처한 상황이 만만찮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과거사 문제로 한·일 관계, 더 나아가서는 일본을 아시아 회귀 전략의 전략적 파트너로 삼고 있는 미국과의 관계마저 소원해지면서 경제 안보 등 여러 면에서 복잡하게 꼬여 가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 기업들의 수출과 매출액이 줄어들고 수익이 악화해 구조조정의 위기에까지 몰리고 있는 데는 지난 3년여 60%가 넘는 엔화 절하는 용인하는 반면, 원화는 조금만 절하돼도 미국 재무부 보고서에 올리는 등 의심의 눈초리로 보고 있는 미국의 태도도 중요한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3년여 한·일 간 교역·투자·관광객 내왕이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드는 등 한·일 경제 교류도 급속히 위축되고 있다.

한국은 미국과 일본은 참여하지 않은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는 참여하면서,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는 참여하지 않는 등 여러 일이 겹치면서 워싱턴 일각에서는 한국의 중국 경사론(傾斜論)마저 나오는 판이다. 지난해 2월로 종료된 일본과의 통화 스와프도 미국의 금리 인상과 중국 리스크 등 동아시아 역내 통화금융 협력의 필요성이 커진 상황인 만큼 재개할 필요가 있다.

직접적으로 한국의 생존이 달려 있는 안보 문제도 예사롭지 않다. 한·미 방위조약과 미·일 방위조약에 토대를 둔 한반도의 안보 지형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엄정한 중립이 대한민국의 생존에 중요한 지금 한·일 관계로 인해 한·미 관계가 소원해져 중국 경사론이 나와선 안 된다. 동북아의 공동 평화와 발전을 위해서도 한·미·일 관계가 미래 지향적으로 발전해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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