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욱 / 서울대 명예교수, 前 대한보건협회장

일전에 어느 지인이 타계했다. 말기까지 의식은 정상이었으나 너무 고통스러워 어렵게 구해온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기도했으나 가족과 의료진에게 발견돼 위 세척 끝에 다행인지 불행인지 생명을 건졌다. 하지만 그는 다시 고통의 터널을 지났고 얼마 뒤 결국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이른바 ‘김할머니 사건’과 함께 이런 사람들에게 존엄사의 길이 열렸다. 드디어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안’ 이른바 ‘웰다잉법’이 통과된 것이다.

의원 재석 202명에 찬성 201명, 기권 1명. 필자는 이 국회 의결 결과를 보고 반갑기도 했지만 일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존엄사에 관한 윤리적인 결말보다 어쩌면 시대의 조류에 따라 법안이 통과됐다고 보는 게 맞을 지도 모른다. 따라서 본회의에서나마 이 문제를 우려하는 반응이 있기를 바랐기에 그런 생각이 든 것이다. 유예기간 중에 추가적인 토론도 거치며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2018년부터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

이 법에 따르면 환자들이 작성한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 환자의 동의 아래 담당 의사가 작성한 ‘연명의료 계획서’, 또는 ‘환자 가족의 진술’에 따라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할 수 있게 됐다.

우리는 이제 루비콘 강을 건넜다. 그 법의 정착 방법을 논의할 때란 뜻이다. 대체로 의료기관을 찾는 이유는 질병을 치유하여 건강을 되찾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많은 법률이 환자의 행복을 보장하고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취지이지만, 이 법은 특이하게 환자의 생명을 ‘앗아가는’ 법이라는 아이러니를 갖고 있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국민의 80% 이상이, 노인의 90% 이상이 존엄사를 찬성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대부분이 건강할 때의 의견일 뿐, 불치의 병이 들어 병원을 찾는 환자가 됐을 때에도 생각이 여전할지를 생각해 보자. 생명에 대한 애착은 상상 이상이다. 심각한 병에 걸린 사람들일수록 절실하게 갖가지 치료법을 찾게 마련이다. 법의 시행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가 뒤따를 것이다. 이제 시작인 것이다.

법의 제정은 법망을 빠져나가는 사례도 만든다. 평소에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를 작성했으나 투병 도중 심경의 변화가 생겨도 미처 수정하지 못하는 본인의 실수(?)로 죽음 당하는 사례는 과연 없을 것인가? 가족의 동의 과정에서 가족 간의 갈등이 유발되는 경우는 없을까? 생명 경시가 가족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이 법이 악용되지는 않을까? 또 의료진의 오판 가능성은 없을까?

법에 따르면 연명치료 중단에 따른 행위는 그 시행에 앞서 최종적으로 법에 규정된 ‘의료기관윤리위원회’의 허가를 받도록 제도도 보강하는 등 다양한 안전 장치가 필요하다. 또한, 이 법은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고 자기 결정을 존중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최종 의사결정자는 가족이나 의료진일진대 이 현실이 무늬만 ‘환자의 존엄사’를 대변하게 되는 건 아닐까.

법은 일반화 과정이다. 연명치료 중단에는 3심도 재심의 기회도 없다. 윤리적인 논란은 법이 생겼다고 종결되진 않는다. 이 법률안 하나로 그동안의 논란과 우려를 포용하지는 못한다. 윤리적인 문제와 함께 그 시행과정의 부작용을 막을 방도에 집중할 때다. 지침서도 마련해야 한다. 정착의 길은 여전히 멀어 보인다. 더욱 신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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