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조 /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학

사안의 심각성을 반영하듯 13일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는 무엇보다 먼저 북한의 4차 핵실험과 관련한 정부의 대응 조치에 대해 언급했다. 박 대통령은 대북(對北) 심리전의 일환으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으며 양자 및 다자 차원에서 북한에 대한 제재를 강화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우방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강력한 제재를 포함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끌어낼 계획도 공개했다. 박 대통령은 특히 중국에 대해 “북핵(北核) 불용 의지를 실제 조치로 보이라”고 강력하게 주문했다. 또한, 한·미 정상 간의 통화를 통해 전략자산의 추가 전개와 연합방위력 강화에도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모두가 적절한 조치이고 실행 가능성을 놓고 보면 당장에는 이것 이상 취할 수 있는 조치도 별로 없어 보인다. 하지만 좀 더 넓은 시각에서 보면 지금까지 해오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북한의 비대칭적 위협이 심각해진 지금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런 통상적인 조치들에 더해 획기적으로 새로운 정책과 수단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사고(思考)의 대전환이 절실하다.

지난 20여 년 동안의 대북 정책은 몇 가지 전제(前提) 또는 믿음에 입각해 있었다. 첫 번째 대전제는 북한으로 하여금 핵을 포기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물론 정부에 따라 당근과 채찍 중에서 어디에 비중을 더 두느냐 하는 차이는 있었지만, 일정한 조건이 주어지면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믿음은 공통된 것이었다.

또 하나의 전제는 주변 강대국들이 북핵 문제에 대해서만은 우리와 비슷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6자회담과 같은 다자적 접근에 기대를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더해 북한 경제의 중국에 대한 높은 의존도 때문에 중국이 북핵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믿음도 있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추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또 막연히 북한 정권이 내부에서 붕괴하는 격변을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일어난 일들을 보면 이런 전제나 믿음은 우리의 ‘희망 사항’에 불과했다. 북한은 붕괴하지 않았고 핵을 포기하지도 않았다. 국제 공조도 결코 원만하지 않았다. 중국의 역할도 기대 이하였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존의 전제를 완전히 뒤집는 일이다. 지금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서도 생존하는 반탄력을 보인 북한인 만큼 격변 사태는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핵무기와 발사체의 개발이 진일보한 지금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더욱 없다. 자기네 헌법에 명시해 대못까지 박았다.

주변국들도 크게 기댈 언덕은 되지 못한다는 자각 또한 절실하다. 북핵 해결은 우리에게는 사활이 걸린 문제지만 이들에게는 무수한 국가 이익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다른 국가 이익을 고려하느라 우선순위에서 크게 밀려날 수도 있다. 심지어 지금껏 그랬듯이 북핵 문제를 다른 국가적 목표나 이익을 위해 이용하려고까지 들 것이다.

이와 관련해 특히 중국이 큰 역할을 해 줄 것이라는 기대는 접는 편이 옳을 것이다. 북한이 소비하는 원유의 90%와 식량의 상당 부분을 공급하는 만큼 중국이 마음만 먹으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대통령의 전화를 받지 않는 시진핑(習近平) 주석, 그리고 핵실험 며칠 만에야 우리 외교부 장관의 전화를 받은 중국 외교부장에게서 그런 의지는 찾아볼 수 없다.

북핵이 미국의 ‘아시아 회귀’ 구실을 주기 때문에 중국이 북한을 부담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도 부분적으로는 사실이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의 논리가 여전히 강하다. 미국을 오키나와(沖繩)에서 남중국해로 이어지는 제1 도련선(島連線), 그리고 나아가 괌과 필리핀까지 포함하는 제2 도련선 밖으로 밀어내겠다는 중국의 대전략이 미국과의 심각한 갈등을 예고하는 한, 완충지대로서 북한의 효용이 북핵에서 파생되는 비용을 능가한다고 판단할 것이다.

한마디로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해서는 우리 자신밖에 믿을 게 없다는 새로운 각오가 필요하다. 국제 공조를 소홀히 하라는 게 아니라, 북한의 비대칭 전력에 대응할 우리의 비대칭적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뜻이다. 자체 핵 능력을 개발하라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구체적으로 언급할 순 없지만, 핵 외에도 다양한 수단이 있을 수 있다. 정부도 암암리에 이런 수단들을 고려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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