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여성골퍼’ 스코틀랜드 메리 여왕
부친이 사망하면서 메리는 태어난 지 6일 만에 스코틀랜드 최초의 여왕이 된다. 선대 왕들처럼 메리 여왕도 거의 매일같이 골프를 즐겼다. 메리 여왕은 공식적인 문헌에 ‘역사상 골프를 친 최초의 여성’으로 기록돼 있다.
메리의 행복했던 시절도 잠시. 결혼 1년만인 1559년 프란시스가 뇌종양으로 사망하면서 스코틀랜드로 돌아왔다. 과부가 된 여왕은 모든 것을 잊기 위해 골프에 매달렸다. 그러나 메리의 남성 편력과 불행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메리는 23세를 갓 넘긴 1565년, 3세 연하의 사촌 동생인 단리 경과 결혼한다. 하지만 왕위 자리를 탐내던 새 남편과는 사이가 틀어졌다. 메리는 정부를 두고 있었다. 남편이 자신의 정부를 죽이자 복수를 결심했다. 여왕은 남편이 골프를 치고 오던 날 왕좌를 미끼로 남편을 별궁으로 초대한다. 들뜬 기분으로 침대에 앉은 단리는 아내가 샤워실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렸지만 여왕은 뒷문으로 빠져나갔고 뒤이어 굉음과 함께 별궁이 폭파됐다. 침실에 설치된 폭탄으로 벌거벗은 단리는 무참하게 살해됐다. 사고를 가장한 살인극이었다. 메리는 남편의 장례식도 안가고 당당하게 골프장에 나갔다.
국민들은 여왕을 불신했고 메리는 왕위를 빼앗겼다. 메리는 잉글랜드로 피신해 엘리자베스 1세 여왕에게 몸을 의지한다. 둘은 고모와 조카 사이였다. 그러나 도와줄 것으로 기대했던 엘리자베스 여왕은 정적인 메리를 성안에 감금시켰다. 메리는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을 규합해 왕권 탈환을 획책하는 등 여러 차례 거사를 도모했지만, 매번 수포로 돌아갔다. 18년간 감금됐던 메리는 1587년 2월 7일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죄목은 남편 살해와 남편이 죽은 지 이틀 만에 골프를 쳤다는 괘씸죄. 물론 왕권 다툼에서 엘리자베스 1세에게 패한 게 처형된 가장 큰 이유였다. 중세시대의 ‘로망’이던 메리는 최초의 여왕이자 최초의 공식 여성 골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남양주골프박물관장
장거리 목표물 맞히는 ‘주 데 메이’ 놀이 유행… 메리, 골프 대중화 이바지
메리 여왕이 프랑스의 세자비 시절이던 1558년 프랑스에는 스코틀랜드 방식의 골프라는 유희가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주 데 메이(JEU DE MAIL)’라는 골프와 비슷한 놀이를 프랑스 사람들은 즐겼다. 주 데 메이는 볼을 때리는 클럽 헤드의 면이 골프와 달랐다. 골프는 헤드의 앞면으로 볼을 치지만 주 데 메이는 헤드의 옆면으로 때렸다. 골프는 홀마다 다른 그린과 구멍(홀)이 있지만, 주 데 메이의 목표물은 1개였다. 누가 먼저 적은 타수로 1㎞ 이상의 떨어진 목표물을 맞히느냐가 주 데 메이다. 교회의 정문, 담장, 혹은 성의 기둥, 공동묘지의 십자가 비석 등 목표물은 다양했다. 프랑스뿐 아니라 인근 벨기에 등에서도 16세기 말 ‘장거리’ 목표물 맞히기 놀이가 유행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4세의 프란시스 왕자와 결혼한 16세의 메리는 골프장에서 사랑을 속삭였다.
프란시스 왕자는 평균치에 못 미칠 만큼 키가 작았지만 준수한 용모에 학식을 갖추었고, 골프 실력도 괜찮았다. 사춘기인 둘이 골프를 즐기는 모습은 프랑스 국민들의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하나둘씩 프란시스-메리 커플을 따라 했고, 골프는 프랑스인의 생활에 녹아들었다.
그리고 벨기에 등 인근 국가로 퍼지게 됐다. 비록 온갖 추문으로 얼룩진 생을 살았던 메리지만 골프의 대중화에 이바지한 공만큼은 간과할 수 없다. 메리의 열정 덕분에 골프가 유럽 대륙으로 전파됐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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