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의 탄생 하지현 지음 / 해냄
르네상스 시대만 해도 광인은 조롱과 경멸의 대상이었지만 사회에서 완전히 배제되거나 폭력적으로 감금되지 않았다. 14세기 이전만 해도 한 집단에 1∼2명 정도의 광인은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하지만 도시생활자가 늘어나고 이들이 무시할 수 없는 숫자가 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하지만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니 큰 벌을 내릴 수도 없었다. 그래서 지도자들이 생각해낸 것이 이들을 배에 실어 정처 없이 떠돌다가 죽도록 방치하는 방법이었다. 이들의 삶과 죽음은 신의 뜻이라 믿음으로써 죄의식도 줄일 수 있었다.
보슈 그림을 보면 광인에 대한 당대 통념을 알 수 있다. 그림 속 이슬람의 상징인 분홍 깃발은 이교도를, 수녀와 수도사가 음식을 탐내는 장면은 금기를 깨는 것을 표현한다. 남자가 칼을 들고 고기를 떼는 행동은 식탐과 본능에 충실한 것, 호리병은 광기를 상징하고 누워 있는 남녀는 성적 쾌락을 의미한다. 격리가 필요한 위험한 사람들을 넘어 종교적으로 용납되지 않고, 욕망에 충실하거나 도덕적으로 문란한 사람까지 광인에 포함된 것이다.
정신건강 전문의 하지현 건국대 교수가 인류의 정신의학 역사를 흥미롭게 정리한 ‘정신의학의 탄생’은 ‘바보들의 배’에서 출발한다. 비이성적, 종교, 주술 등이 뒤엉켰던 정신과 마음의 문제가 어떻게 주술적 치료, 격리와 감금에서 벗어나 오해와 편견을 털고 합리적이고 유용한 정신의학으로 정립됐는지를 42가지 결정적인 순간을 통해 살핀다. 정신의학사 발달에 결정적인 의미를 지닌 사례·발견·인물 등을 따라가다 보면 어렵지 않게 정신의학 전체 역사를 살필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예를 들어 정신의학사에서 유명한 청년 피니어스 게이지 사례는 언제 봐도 흥미롭다. 1848년 미국 버몬트주 철도 공사 현장에서 25세 청년 게이지는 작업 중에 다이너마이트 폭발 사고로 1m 길이의 쇠막대가 머리에 박힌다. 다행히 병원에 이송돼 큰 수술을 받은 그는 회복돼 업무에 복귀하지만 문제는 그의 성격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이다. 평소 성실하고 온유한 성격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신뢰를 받았던 그는 화를 참지 못하고, 충동적이며 사람들과 쉽게 시비가 붙는 성격으로 바뀌었다. 담당의는 사고와 수술로 뇌의 전두엽 상당 부분을 잃은 것과 성격 변화 사이의 관계를 분석했고, 그의 사후엔 게이지의 두개골을 정밀 연구했다. 결국 게이지 사례로 전두엽 손상이 한 사람의 성격을 바꿀 수 있다는 것, 뇌의 변화가 사람의 성격에 영향을 미치는 물질적 기반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와 함께 스트레스, 우울증, 식이장애, 사이코패스, 외상 후 스트레스, 과잉행동장애, 치매와 알츠하이머 같은 우리에게 익숙한 질병들이 어떻게 발견돼 관련 연구가 발전해 왔는지도 추적하고, 예술가 중에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이 많다는 일반적인 통념도 과학적으로 해석해낸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저자는 정신질환이 뇌 기반의 질환이라는 학파와 마음의 병이라는 학파 간의 오랜 대립, 개인의 문제라는 의견과 사회적 환경의 영향이라는 논란, 정상과 비정상 사이에 분명한 경계를 세울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 등을 자연스럽게 살핀다. 저자는 “정신의학은 이 모든 것이 과학적 발견과 사회 분위기의 변화에 따라 우위를 점하기도 하고,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면서 엎치락뒤치락해 온 결과”라며 “정신의학이라는 큰 강은 결국 서로 다른 수많은 강줄기가 하나로 모인 것”이라고 말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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