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동 / 경제산업부 차장

2000년대 초 필자는 1∼2년마다 한 번씩 핀란드를 방문하곤 했다. 그때만 해도 국가경쟁력 세계 1위였던 핀란드는 한국에 많은 영감을 주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2002년 10월 어느 날에도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 핀란드 최대의 민간경제연구소인 핀란드경제연구소(ETLA)에 간단한 이력서와 질문지를 보낸 뒤 인터뷰를 신청했다.

그러나 손에 지도를 쥔 채 헬싱키 시내에 있는 ETLA 건물에 도착한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ETLA 6명의 팀장이 한꺼번에 필자를 맞았기 때문이다. 페카 울라 안틸라 연구팀장은 “질문 내용이 다방면에 걸쳐 있어서 다른 팀장들을 모두 데리고 나왔다”고 말했다. 그렇게 의도하지 않은 ‘1 대(對) 6 인터뷰’를 마친 뒤부터 해외 취재를 할 때 가급적 질문지를 간단하게 쓰는 습관이 생겼다.

그 당시 거시경제를 담당하던 필자가 ETLA 박사들에게 가장 궁금했던 점은 “핀란드 경제가 노키아라는 특정 기업에 크게 의존하는데, 어떻게 리스크(위험)를 관리하느냐?”는 것이었다. 당시 노키아는 헬싱키증권거래소(HEX)에 상장된 전체 주식 시가총액의 65% 이상, 핀란드 기업 연구·개발(R&D) 투자비의 47%, 핀란드 수출의 18%, 제조업 고용의 5%를 각각 차지하고 있었다. 파시 소르요넨 경기예측팀장이 “핀란드 경제성장률을 전망할 때 가장 중요한 게 노키아의 매출 증가율을 추정하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필자는 핀란드에서 노키아에 대해 물으면서 삼성그룹, 특히 삼성전자의 미래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 뒤 핀란드 경제는 노키아의 경영 악화 등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요즘에는 조금씩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필자는 2010∼2011년 삼성전자가 스마트 기기에서 애플에 크게 뒤질 때도 “삼성이 하드웨어 개발력 등 특유의 저력을 발휘해 금방 애플을 따라잡을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근거는 단순했다. 애플이 아이폰, 아이패드 등 ‘하이엔드(고가품)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면, 삼성전자는 저가부터 고가까지 다양한 제품군을 내놓고 전 세계 소비자들을 동시에 공략하는 ‘캐치 올(Catch-all) 전략’을 쓰고 있어서 그만큼 유연하게 상황 변화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짧은 시간에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에서 애플을 따라 잡았고, 그것은 매출액과 영업이익 증가로 이어졌다.

그러나 요즘은 상황이 바뀌었다. 애플은 예나 지금이나 하이엔드 전략 일변도로 나가고 있지만, 삼성의 캐치 올 전략은 로엔드(저가품 또는 보급품) 시장에서 중국 회사 등에 급속도로 잠식당하고 있다. 삼성전자로서는 그나마 반도체가 꾸준히 성장세를 보이는 게 다행이다. 그러나 반도체가 미래의 ‘캐시카우’(수익원)가 될 수는 없다. 따라서 삼성전자는 장기(長技)인 강력한 ‘선택과 집중’을 발휘해 이른 시일 내에 새로운 고부가가치 제품을 발굴해내야 한다. 바이오산업 등 삼성그룹의 미래를 열어갈 새로운 성장 산업을 인큐베이팅하는 것도 삼성전자의 몫이다. 삼성전자가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국내 주식시장에서 ‘대장주’ 역할을 하는 것 이상이다. 삼성전자의 미래가 보여야 한국 경제에 희망이 있다.

haedong@munhwa.com
조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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