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선 / 사회부장

최근 우리 사회를 놀라게 한 최모 군 살해 사건은 인간이 얼마나 야만적일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현실의 끔찍함을 드라마의 판타지로 외면하려는 방어기제 때문일까. 지난 주말에 끝난 ‘응답하라 1988’의 따스한 여운을 곱씹게 된다. 이 드라마는 되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동네 사람들끼리 희로애락을 더불어 나누던 그 시절. 골목에서 함께 어울리던 아이들은 동네 어른들 모두의 보살핌을 받았다. 일종의 ‘공동 육아’가 자연스럽게 이뤄진 셈이다.

그 시절의 골목에선 최 군처럼 실종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부모라는 탈을 쓴 짐승 같은 자들이 제 아이의 시신을 훼손한 후 몇 년이나 숨긴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는 최 군 사건이 어디에선가 또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걱정한다. 이웃에 누가 사는지, 옆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는 시대에 살고 있는 탓이다.

이번 사건은 교육부가 초등학교 장기 결석자 전수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인천 11세 여아 학대 사건이 발생한 것을 계기로 이뤄져 어둠 속에 있던 또 하나의 사건이 밝혀진 것이다. 교육 당국과 학교는 이번 사건을 통해 그동안 제 역할을 다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누구보다 교사들이 자신의 본분을 다했는지 성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제도적 측면에선 교사의 상담 요청을 기피하는 학부모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의무 상담제’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건은 아동학대 측면에서만 부각되고 있으나, ‘학교 밖 청소년’ 문제로 확대해서 봐야 한다. 학교 밖 청소년은 말 그대로 초·중·고 학업을 중단하고 학교를 떠난 아이들을 일컫는다. 지난해 기준으로 28만여 명에 달한다. 그런데 이는 정부의 추산일 뿐 정확한 수치는 모른다. 어느 전문가는 30만 명이 훨씬 넘을 것이라고 한다. 부모의 지원으로 외국 유학을 가거나 대안 학교 등에 들어간 학생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제도권 밖에서 배회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이들을 품지 못하면 공동체의 커다란 위협 요인이 될 것이다. 일리 있는 걱정이지만, 부정적 측면만 강조할 필요는 없다. 그들이 방황과 일탈의 어두운 동굴에 있다며 손가락질만 할 게 아니라 희망의 광장으로 이끌어내야 하는 것이 기성세대의 의무다. 학교 밖 청소년들이 소질에 맞게 꿈을 키워 창의적 인재로 성장한다면 오히려 미래의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현재 정부 내에서 여성가족부가 이 문제의 컨트롤타워를 맡고 있다. 지난해 ‘학교 밖 청소년 지원 법률’이 시행되면서 여가부는 관련 사업에 온 힘을 쏟았다. 전국 각지에 지원센터를 늘리고, 거리를 떠도는 아이들을 찾아서 상담하며 그들의 애로점을 해소하거나 진로에 도움을 주고자 했다. 그러나 그뿐, 학교 밖 청소년 지원 사업은 큰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전체 숫자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데서 드러나듯, 정보제공 관련 법령 등 제도적 장벽과 국민의 무관심에 가로막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황교안 총리는 지난해 9월 학교 밖 청소년 지원센터를 찾았을 때 “학교 밖 청소년 정책을 직접 챙기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 이후 무엇을 어떻게 챙겼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이 문제는 국가적으로 대책을 세우고 실행해야 한다. 우선 학교이탈 청소년 정보를 제대로 확보할 수 있도록 관련 법령 개정에 힘써야 한다. 사업 추진력을 위해선 부처 내에서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여가부가 컨트롤타워를 맡고 있는 것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업무 특성상 여가부가 계속 주도해야 한다면, 관련 부처가 모두 전력을 다해 지원하는 시스템을 튼실히 구축해야 한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주인공 중 한 명인 바둑 천재 최택은 학교 밖 청소년이었다. 학교를 그만뒀으나 소외의 그늘에서 배회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바둑의 길로 매진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골목 친구들의 끈끈한 우정과 함께 동네 어른들의 두터운 관심 덕분이었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서구에서도 ‘한 아이가 크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It takes a village to raise a child)’는 것이 상식이다. 학교 밖 청소년들을 공동체의 품 안으로 끌어올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고, 그것을 착실히 실천해야 한다. 이게 부모가 제 자식의 시신을 훼손하는 시대에 사는 우리의 절실한 소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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