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진모영의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촬영지 강원도 횡성
내가 노부부를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오라는 곳이 없어 방송사 비정규직을 거쳐 프로덕션에서 방송물을 만들며 살고 있었다. 연차가 올라가고 팀장이 됐지만 방송사에서 걸려오는 전화는 늘 호통 일색이었고, 제작현장에서는 점점 멀어져갔다. 삶은 양은냄비처럼 찌그러져 갔다. 그러던 중 2009년 초에 선배이자 동료였던 이충렬 감독이 ‘워낭소리’를 만들어 세상에 내놓았다. 이 다큐멘터리는 296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역대 다양성 영화 흥행 순위 1위로 올라섰다. 실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은 현상을 보고 ‘나도 뭔가 사고를 칠 수 있겠구나’하는 헛바람이 들었다. 이렇게 나는 ‘워낭소리 키드’가 됐다.
회사를 퇴사하고 지금은 고인이 된 이성규 감독의 장편극영화 ‘시바, 인생을 던져’의 제작에 매달리다 강원도 횡성에 사는 노부부의 영상을 보게 됐다. KBS 인간극장 ‘백발의 연인’ 편이 그것이었다. 5부작은 멈출 수 없는 마력이 있었다. 그날 귀가해서 아내를 붙잡고 이 놀라운 부부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설명을 했다. 아내는 아마 ‘이 사람이 대체 왜 이러나’하는 표정이었던 것 같다. 집에 오기 전 여기저기 뒤져 마을 이장님과 연결됐고, 강계열 할머니께 가겠다고 허락을 받아뒀다.
다음 날 아침 일찍 횡성으로 떠났다. 전남 해남군이 고향인 나는 강원도 지리에 약하다. 큰 산이 많은 강원도는 그저 깊고 멀다는 생각만 있었다. 하지만 새벽에 서둘러 가니 2시간 정도 걸리는 길이었다. 조병만 할아버지와 강계열 할머니가 사는 집에 도착한 것은 오전 9시도 되지 않은 이른 시간이었다. TV에서 본 집에서 그렇게 생긴 노부부가 여전히 살고 있었다. 두 분과 함께 중년의 여성도 있었다. 큰딸이었다. 영화에서 큰 오빠와 생일에 ‘맞짱’을 뜬 여걸 말이다. 그녀는 낯선 외부인을 매우 조심스러운 눈으로 살피고 이것저것 캐물었다. 나중에 그녀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부모님이 TV를 통해 유명해지니 혹여 사기꾼이라도 찾아올까 봐 너무 무서웠다고 했다. 하지만 나와 동행한 순하고 성실하게 생긴 참한 여인 둘(아내와 조감독)을 보고 금방 마음을 열어줬다.
두 분의 사랑이 워낙 크고 위대해 극장용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자녀들과 의논을 해봐야 한다고 했다. 하루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이야기를 끝낸 부부는 이제 외출할 준비를 했고 우리는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부부는 읍내로 떠났고 우리는 서울로 돌아왔다. 다리를 건너는 부부에게 요청해 다리 중간에서 사진을 찍었다. 우리하고도 찍었고 부부만 찍기도 했다. 나는 부부에게 집을 바라보는 포즈를 요청했고 부부의 뒷모습과 그 너머의 집을 촬영했다. 지금도 그 사진을 보면 ‘저 집에 다시 가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며 마음이 아파 온다. 다음날 오후에 전화벨이 울렸다. “부모님이 연로해서 우리는 말리고 싶지만 부모님께서 하고 싶어 하시니 어찌 자식들이 말릴 수 있겠어요. 감독님이 말한 대로 이번 촬영이 부모님의 마지막 기록이 될 수 있으니 부모님의 진실한 사랑을 잘 담아주세요.”
그리고 2012년 가을에 첫 촬영을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낙엽을 던지며 장난을 치고 꽃을 꺾어 할머니 머리에 꽂으며 사과를 하던 그 장면이 첫날 찍은 첫 장면이다. 할머니는 육류를 드시지 못한다. 벌레며 뱀 같은 것은 유난히 무서워하는 소녀 같은 할머니가 나물을 뜯는다고 산을 다니는 게 걱정됐던 할아버지는 엄나무를 산에서 뽑아와 집주변에 심었다. 할머니는 봄이면 탐스럽게 올라오는 엄나무 새순을 유난히 좋아했다. 그 낙엽들은 집 주변에 심은 엄나무 10여 그루 중 화장실 앞에 심은 것에서 떨어진 것이다. 그 퇴색한 것들로 애정이 활기를 유지하고 동심으로 돌아가 장난을 하는 두 분의 모습이, 젊은 연인들이 눈 바탕에서 뒹구는 영화 ‘러브스토리’에 뒤진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는가.
마당 가운데 심어진 향나무는 할아버지의 수의를 빨아 말리던 할머니를 지켜보고 있었고, 할아버지 나이 칠십에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며 심었다는 밤나무는 아름드리가 돼 해마다 겨울 간식으로 두 분을 즐겁게 해주었다. 매년 국화도 잘 자라줘 사과와 애교의 꽃꽂이 놀이를 할 수 있게 해줬다. 나는 촬영 중에 가끔 ‘나이 들어 귀찮게 뭘 그런 것을 할까’하는 몹쓸 생각을 했다. 할머니는 내게 말씀하셨다. “선상님요∼, 젊으나 나이가 드나 마음은 모두 한가지래요.” 누가 나이 든 이들의 사랑을 평가절하할 수 있는가. 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집안의 나무와 화초와 텃밭을 가꾸고 동물들을 키우며 그 속에서 소중한 삶과 사랑을 계속 키우고 있었다.
다큐 촬영 시 숙소는 촬영 대상자와 가까울수록 좋다. 하지만 산골엔 숙소도 식당도 없다. 난감한 일이었다. 부부의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교회가 보였다. 고등학생 나이의 아들 둘을 홈스쿨링으로 훌륭하게 키운 젊은 목사 부부가 농촌노인들을 정성껏 돌보며 목회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집에 조심스럽게 숙식을 청했고 2층 교회당에 딸린 작은 방에서 내내 머무를 수 있었다. 그 집은 4마리의 개를 키웠는데 강가에서 촬영하던 나를 습격해 탐스러운 내 엉덩이를 물어뜯어서 개 트라우마를 만든 것도 골든리트리버 잡종인 그 집 큰 개였고, 할머니집 개 공순이를 무려 4번이나 임신시킨 것도 그 집 3번 명랑이었다. 착하고 성실했던 목사 가족은 이제 그 집에 없다. 은퇴하는 서울의 노 목사 전별금을 그 교회를 팔아서 마련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멀리서 들었다. 그 교회당 ‘피정의 방’은 다큐 촬영의 고요한 용광로였다. 가끔 그 교회를 멀리서 바라볼 때면 힘들고 쓸쓸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노부부의 집에는 보물 같은 곳이 많지만, 그 중에도 숲 쪽에서 흘러내린 물이 모이는 할머니의 옹달샘과 개울가 너럭바위가 가장 눈길을 끈다. 남편의 돌팔매질에 번번이 물세례를 받곤 했던 곳에는 사철 맑은 물이 흘러들어 모였고, 부인은 여기서 나물이며 채소들을 씻곤 했다. 세탁기가 있었지만 둥글넓적한 바위에 걸레들을 올려두고 방망이질로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했고 밤이 무서워 화장실에 가기 힘들 때 쓰던 요강을 말끔하게 씻는데도 요긴한 장소였다. 전기도, 어떤 에너지도 쓰지 않지만 자연에서 얻은 아름다운 생활의 공간이었다. 너럭바위는 여름날 저녁, 은밀한 나의 샤워장이 되어주기도 했다. 옹달샘을 지나 개울가로 나서면 그야말로 커다란 너럭바위가 펼쳐진다. 바위에는 중간중간 커다란 말뚝이 들어갈 구멍이 패어 있는데 이는 지금의 콘크리트 다리가 놓이기 전, 나무로 된 다리를 지지하는 나무 말뚝이 박혔던 흔적이다. 이 나무다리는 큰물에 매번 유실되었고 십 년 전 새 다리가 놓이면서 사라졌다고 한다. 개울 건너 물을 사이에 두고 카메라를 켜고 기다리면, 작은 사람 둘이 손을 붙잡고 조심조심 물을 건너 너럭바위에 앉고는 했다. 노부부는 아무 말 없이 흐르는 물을 쳐다만 보다 가기도 했고 할아버지가 돌멩이를 개울에 던지면 할머니가 박장대소 하기도 했다. 또 작은 고둥을 물에서 건져 손바닥에 올려두고는 두 마리가 부부다 아니다 실랑이를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한 사람은 자리에 눕고 한 사람은 슬픈 표정으로 세차게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석 달만 더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시사철 다른 모습으로 흐르는 개울 물소리가 고요해지면 가을 물을 뒤따라 겨울이 쫓아왔다. 백설이 만건곤한 강원도의 풍경은 따뜻한 해남 촌놈이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학교도 군대생활도 남도에서 했던 나는 강원도의 그 추위가 묘하게도 서러웠다. 그 동네 논밭에 차를 두 번이나 밀어 넣고 레커차의 도움을 받은 것도 추운 기억이다.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을 두 번 겪으며 그 건강하던 할아버지는 하늘나라로 떠났다. “눈이 펄펄 내리는 날 우리 집에 왔어요”라고 기억하던 할머니의 말처럼 눈과 함께 그녀를 찾아온 그는 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덮은 날 다시 그녀의 곁을 떠났다.
2013년 겨울까지 15개월의 촬영을 하는 동안, 나는 노부부의 사랑과 작별을 보았다. 그러는 동안 나는 부부의 막내가 되었고 생일이며 명절이며 제삿날에 찾아가게 되었다. 눈 많고 추운 강원도 횡성은 이제 나의 ‘제2의 고향’이 됐다. 지난해 12월 20일, 제사를 끝으로 탈상했고, 이제 할머니는 그 집에 살지 않는다.
언젠가 마당가 층층 나뭇가지에 앉아 까불던 할미새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던 할머니께 내가 말했다. 이렇게 맑고 예쁜 집에 살아서 좋겠다고. 할머니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선상님요∼, 이 집은 보기하고 달라요. 벌레도 나오고 춥고 무섭고 노인들이 살기가 힘들어요. 나도 동무들처럼 아파트에서 살아보고 싶어요.” 평소 하늘의 별을 따다 준다는 할아버지가 보낸 선물인지, 관객들의 사랑으로 할머니는 읍내에 따뜻하게 햇살 잘 드는 아파트에서 편안하게 살고 계신다. 요새는 읍내 노인회관에 가서 화투로 돈을 잘 따고 계신다는 소식도 들린다.
내가 두 분을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하지만 사랑을 찾아 먼 길을 돌았던 아픈 기억들을 다시 생각해보면 이 노부부를 만난 것은 필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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