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경기 안성 출생인 고인은 13세에 처음 한국 전통춤의 거장 한성준(1874∼1941)을 만났고, 15세에 한성준고전음악연구소에 들어가 정식으로 무용을 시작했다. 한성준의 제자 중 유일한 생존 무용수로, 태평무를 비롯해 한량무, 승무 등 한국 전통춤을 배워 전승시켰다. 고인은 전통춤뿐 아니라 창작 무용도 이끌어 1950~1960년대 ‘법열’ ‘초혼’ ‘열두무녀도’ ‘원효대사’ 등을 발표하기도 했다.
특히 고인은 한국 춤을 세계에 널리 알린 인물로 평가받는다. 1960년 파리국제민속예술제를 통해 본격적인 해외 공연을 시작했으며, 2006년에는 한국 전통춤 최초로 미국 뉴욕 링컨센터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170여 개국에서 1000회 이상 공연해 한국 무용가 중 가장 많은 나라에서 공연한 기록을 세웠다.
1988년 태평무 예능보유자로 지정됐으며, 1998년에는 고향인 안성에 태평무 전수관을 설립해 전통춤 보급에 힘썼다.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회장, 제14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했고, 국민훈장 목련장(1973), 대한민국 문화예술상(1975) 등을 받았다. 장례는 한국무용협회장으로 치러진다. 유족으로는 무용 의상디자이너인 딸 이남복 씨가 있으며,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25일 7시다. 02-2072-2114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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