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검은 사제들’로 주목받은 박소담이 처음 연극 무대에 섰다. 작지만 단단한 체구, 안정된 성량과 호흡, 그리고 유연한 몸짓…. 지난 23일 개막한 연극 ‘렛미인’(사진)에서 박소담은 자신이 왜 충무로 ‘괴물 신인’인지를 당당하게 입증했다. 그녀의 존재감은 하얀 눈으로 뒤덮인 자작나무 숲을 관통해 객석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화제작이라고 해서 수작으로 평가받는 일은 드물다. 그러나 동명의 스웨덴 영화를 원작으로 한 ‘렛미인’은 박소담을 비롯한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에 몽환적인 무대와 안무, 서정적인 음악, 그리고 치밀한 연출이 더해져 올해 최고 수작 중 한 자리를 이미 꿰찬 듯 보인다.

연극은 뮤지컬 ‘원스’로 토니상을 수상한 존 티파니가 연출을 맡았다. 2013년 스코틀랜드 국립극단이 먼저 선보였고, 이번 한국어 버전은 오리지널 무대의 구성과 연출 형식을 그대로 가져오는 ‘레플리카’다. 국내 연극계에서 최초로 시도되는 것이기도 하다.

동화처럼 예쁘면서도 어딘지 스산하고 기묘한 분위기의 무대. 뱀파이어 소녀 일라이(박소담·이은지)와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소년 오스카(안승균·오승훈)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두 인물의 첫 만남과 대화, 끌림의 시간들은 달콤하고 매혹적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시간이 깊어질수록 무대 위는 핏빛으로 붉게 물들어 간다.

일라이 옆에서 헌신하며 점점 늙어가는 하칸(주진모)은 살인을 일삼다가 궁지에 몰리자, 자신의 얼굴에 염산을 뿌리고 죽게 된다. 혼자 남겨진 일라이는 오스카 앞에서 경찰관을 살해해 피를 빨아 마시는 장면을 노출하고 만다. 하얀 눈 위에 쏟아지는 검붉은 피. 잔혹한 시각적 충격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쯤, 연극은 다시 ‘물의 공포’ 속으로 관객들을 잡아당긴다. 일라이와 오스카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모두가 그 ‘절정’을 향해 달려가는 순간, 연극은 이제껏 한국 연극이 경험하지 못한 생동감 넘치는 결말을 선사한다.

이 작품만의 아름답고 슬픈 분위기를 더욱 짙게 만드는 이 ‘명장면’은 공연장에서 직접 확인하시라.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동작들, 반짝이는 무대, 북극으로 감각을 곧추세우게 하는 아이슬란드 가수 올라퍼 아르날즈의 음악…. 두 눈과 귀를 뗄 수 없는 ‘첫 경험’이 될 테니.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2월 28일까지, 02-580-1300·1544-1555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사진 = 신시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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