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영 씨가 지난 25일 충북 제천시 신월동 자신의 집 거실에서 고춧가루와 땅콩을 제자들에게 보내기 위해 아내 김경희 씨와 함께 포장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이천영 씨가 지난 25일 충북 제천시 신월동 자신의 집 거실에서 고춧가루와 땅콩을 제자들에게 보내기 위해 아내 김경희 씨와 함께 포장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1월의 스승상’ 이천영 전직교사

“40년 넘게 교직에 있으면서 학교 아이들을 뒷바라지하느라 정작 아들, 딸 졸업식은 한 번도 못 갔어요. 집사람이 제 몫까지 자식들을 돌보느라 고생을 많이 했지요.” 지난 25일 충북 제천시 신월동 자택에서 만난 이천영(64) 씨는 1972년부터 2013년까지 제천시 일대의 금성초교, 월악초교, 동명초교 등에서 교사로 재직했다. 그는 밤낮으로 농사일하느라 자녀들을 돌볼 겨를이 없는 학부모들을 대신해 방과 후에도 학교에 남아 학생들을 챙겼다. 그는 학원에 다니거나 여행을 갈 여력이 없는 가난한 제자들을 위해 방학 때도 학기 중과 같이 학교에 출근해 학생들을 돌봤다. 이처럼 학교생활에는 유난스러울 정도로 열정적인 그였지만 집안일에는 늘 소홀한 가장이었다.

이 교사는 “매일 학교에 붙어 산 덕분에 아들 학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고 딸은 중학교 운동회 때 점심을 사주러 학교에 한 번 들른 것이 전부”라며 “아들, 딸에게 두고두고 미안한 마음뿐”이라고 고백했다. 이 교사의 아내 김경희(64) 씨는 “남편이 딸 아이 운동회도 아이가 하도 졸라서 간 것”이라며 “그 흔한 가족여행 한 번 가지 못했지만 교사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1970∼1980년대 먹고사는 것이 힘들어 공부하는 것은 사치로 여겼던 시절 학생들이 학업을 포기하지 않게 돕는 일에 가장 애를 썼다. 그는 학생들이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학업을 포기하려 하면 몇 달이 걸리더라도 설득해 중학교에 진학시켰다. 이 교사는 “집집이 사정이 어려웠던 시절, 넘쳐나는 빚을 감당 못한 학부모들은 별수 없이 아이들의 공부를 포기시켰다”며 “학부모들을 찾아 ‘아이의 좋은 머리가 아깝다’며 사흘 밤낮을 설득시키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내가 설득해 중·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진학한 아이들이 박사도 되고 대기업 임원도 됐다”며 자랑했다.

이 교사는 어려운 환경에도 학교 공부를 이어가는 제자들을 물질적으로 돕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는 박봉(薄俸)을 쪼개 사정이 딱한 제자들의 책과 옷, 신발, 먹을거리를 샀다. 그는 “아이들과 얼마 되지 않는 돈으로 돼지고기를 사서 김치를 잔뜩 넣고 두루치기를 해서 배불리 먹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도시락을 싸올 형편이 되지 않는 제자들을 위해 아침이면 자신이 먹을 도시락 이외에도 여분의 도시락 2∼3개를 챙기는 일도 잊지 않았다.

아내 김 씨는 “학교 아이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사느라 남편이 온전히 월급을 집으로 가져오는 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1972년 당시 한 반 60명의 학생 중 40명은 배불리 먹지 못했다”며 “그 사정을 아는 아내는 한 번도 싫은 내색 없이 솜씨를 부려 아이들의 도시락을 쌌다”고 아내를 향한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그는 어려운 가정환경을 딛고 천신만고 끝에 대학에 들어간 제자가 책 외판 일을 하면 제자가 파는 책 중 가장 비싼 ‘백과사전 전집’을 사주는 스승이었다. 이 교사는 “도시에서 대학에 다니던 아이가 뜬금없이 제천까지 내려와 우리 집을 찾았을 때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며 “아이의 불룩한 서류가방에 책 광고지가 있는 것을 보고 가장 두꺼운 책을 골라 샀다”고 말했다. 이 교사가 책을 팔아주며 도운 제자는 대학교 공부를 무사히 마치고 현재는 국내 전자회사 대기업의 임원으로 재직 중이다. 성공한 제자는 지금도 잊지 않고 이 교사를 찾아 해마다 음식을 대접한다.

그는 2003년 교육부가 선정하는 ‘올해의 스승’에 뽑혀 받은 상금 1000만 원도 어려운 가정의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기부했다. 교사로 현직에 있을 때는 해마다 4명씩을 선정해 총 120만 원을, 퇴직 후에는 매년 1명을 선정해 30만 원을 장학금으로 전달했다. 이 교사는 올해의 스승으로 선정된 것 이외에도 2013년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지난 4일에는 교육부에서 ‘1월의 스승’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 교사는 제자들이 방황할 때는 편지를 써서 바른길로 인도했다. 그는 “아이들은 교사가 자신을 신뢰하고 있는지를 귀신처럼 안다”며 “교사가 먼저 글과 말로 관심을 표시하면 아이들은 쉽게 삐뚤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말수가 적은 이 교사는 말 대신 글로 제자들을 향한 마음을 표현했다. 그는 제자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급학교에 진학해 직장에 들어간 후에도 종종 편지를 주고받으며 제자들의 안부를 챙겼다. 명절 때마다 그의 집을 찾는 제자들은 20∼30년 전부터 이 교사와 주고받았던 편지를 들고 와 감사함을 표시한다. 그는 “아이들이 내가 준 편지 한 장 한 장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내가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그는 퇴직 후에는 농사를 지으며 시골 마을에서 아내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한 해 동안 생산한 농작물은 형편이 어려운 제자들이나 그의 집을 찾는 제자들과 나눈다. 이 교사는 또 도시의 학생들에 비해 학원 공부가 힘든 시골 마을의 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일도 하고 있다. 그는 “학교를 떠났어도 아이들의 선생님으로 지내는 것이 가장 편하다”며 “제자들을 가르치고 그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히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제천 = 정유진 기자 yooji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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