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탁 위의 세계화’는 이제 전 지구적인 현상이다. 중국에서 생산된 콩과 태국에서 온 새우, 베트남에서 잡힌 생선, 칠레에서 재배된 블루베리가 한 상에 오른다. 세계가 경제적으로 가까워지면서 음식의 세계화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저마다 원산지가 다른 식재료는 평균 2000㎞를 이동해서 우리 밥상에 오른다. 이런 식재료는 과연 어떤 과정을 거쳐 재배되거나 포획되며, 어떤 경로를 통해서 우리 식탁까지 올까. 이 책은 식탁에 올라오기까지 식품의 사슬구조를 되짚는다. 스타벅스 커피에 원두를 공급하는 콜롬비아의 커피 농장을 뒤지고 초콜릿, 바나나, 바닷가재, 사과 주스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 공급되는 식품의 생산지역을 찾아 우리가 먹는 것의 재료가 과연 어떻게 재배되고 거래되며 어떻게 우리 식탁에까지 오르게 되는지를 추적한다.
저자는 이 책 이전에도 의류의 다국적 생산과정을 추적한 책을 출간한 바 있다. 국내에도 ‘윤리적 소비를 말한다’는 제목으로 번역돼 나왔다. 옷의 상표에 붙은 원산지를 추적해 온두라스와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중국 등지에서 옷을 만드는 노동자의 삶과 노동 현실 등을 다룬 책이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비인간적인 환경에서 장시간의 노동을 감내해야 하는 저개발국가 노동자의 삶과 자본의 탐욕, 그리고 소비자들의 무지에 대해 다뤘다.
전작이 옷에 대한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음식이다. 저자는 식료품 상표에 깨알 같이 적힌 원산지를 찾아 농장에서 생산자를 만나고 가공공장의 노동 현장을 들여다본다. 사실 책에는 식품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원산지의 농장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주민의 삶 이야기가 더 많다. 수천㎞ 떨어진 곳에서 재배된 다양한 먹거리를 값싸게 먹을 수 있게 된 데 기여한 농약과 플랜테이션 농장, 저장과 유통의 혁신이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현지 주민들의 생활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미국의 시푸드 체인인 ‘레드 랍스터’에 공급되는 바닷가재는 대부분 니카라과의 미스키토 족이 훈련도 받지 않고 공기통 하나만 달랑 메고 심해로 들어가 잡아온 것들이라는 얘기. 산소통에 얼마나 산소가 남았는지를 알려주는 계기판조차 없이 심해로 들어가는 건 그야말로 목숨 거는 일이다. 열세 살에 잠수를 시작한 이들은 대개 스무 살쯤 되면 심각한 부상을 입고 버려진다. 시내에는 지팡이와 목발, 휠체어에 의지한 젊은이들이 일자리가 없어 어슬렁거릴 뿐이다. 그럼에도 레드 랍스터는 최근까지도 ‘바닷가재는 전부 통발로 잡은 것’이라며 거짓말을 했다.
또 하나의 예는 다국적 커피 체인인 스타벅스에서 내놓은 고급 커피 ‘블랙 에이프런 익스클루시브’. 스타벅스는 이 커피가 ‘깨끗한 물과 철저한 환경보전 농법으로 재배된다’고 자랑했지만, 에티오피아에 있는 농장은 썩은 악취가 풍겼으며 강에는 걸쭉한 물질들이 떠다녔다. 더 놀라웠던 건 이런 사실이 알려지기 전까지 스타벅스 관계자가 이 농장을 단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책에 등장하는 여러 사례들을 따라가다 보면 다양한 질문과 해답을 만나게 된다. 식탁의 세계화와 식재료의 단시간 장거리 이동은 전 세계 농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식량경제가 세계화되는 건 문제점일까, 해결책일까. 농부는 더 늘어야 하는가 아니면 줄어야 하는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생산자들에게 소비자들이 어떻게 하면 가장 바람직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까…. 책은 ‘식탁’을 다루고 있지만, 결국 이야기하는 건 역사, 경제, 정치, 사회 문화 등이다.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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