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2월 22일 프랑스 파리에서 미국 마이애미로 향하던 아메리칸항공 소속 보잉 767기에서 중동인 테러리스트가 폭파를 기도했다. 한 승객이 격투 끝에 제압해 위기를 모면했다. 자칫하면 항공기 테러에 쓰일 뻔했던 ‘컴포지션4’는 28g만 터뜨려도 항공기 동체 벽을 파괴할 수 있는 가공할 폭탄이었다. 당시 보안 검색대는 금속성 폭발물을 정확하게 찾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검색대 기술로는 범인의 신발 뒤축에 숨겨둔 플라스틱 폭약은 찾아내기 어려웠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은 모든 공항에서 100% 신발 검색을 실시했다. 승객 검색 시간이 배로 소모됐고, 각 공항이 시장통을 방불케 하는 대혼잡에 빠졌다.
‘신발 뒤축 사건’은 공항 보안이 첨단장비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보안학의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신하게 한다. 다양한 상황에 민첩하고 정확하게 대처하는 공항 운영진의 노하우와 적당주의와 타협하지 않는 끈질긴 자세가 절실하다. 최근 인천공항이 외국인 환승객의 밀입국 통로가 되다시피한 사건은 거의 우화 수준이다. 지난 1월 21일 중국인 환승객 부부가 단 14분 만에 인천공항 보안시스템을 뚫고 밀입국한 데 이어 8일 만에 또다시 유사한 보안사고로 공항 심사대가 뚫렸다. 1차 사고 직후 정부가 ‘출국 심사장 운영 종료 후 출입 통제’ 등 재발 방지책을 내놓은 상황에서 벌어진 사건이라 더욱 망신스럽다.
이번 사건은 ‘세계 공항 서비스 평가 1등’ 뒤의 민낯을 드러냈다. 미국은 9·11테러 이후 국토보안청까지 만들었고, 주로 국가 공무원인 보안청 요원들이 공항 보안 검색을 맡고 있다. 한국은 국가 안위가 걸린 최고 보안 시설을 너무 허술하게 관리한다. 지난 3년간 인천공항 공사 사장이 3번 바뀌고 11개월간 사장 자리가 공석이었다. 대표적 ‘낙하산’ 인사인 박완수 사장이 총선에 출마하겠다며 임기 도중인 지난해 12월 사퇴하면서 수뇌부 공백이 초래됐다. ‘허브’가 아닌 ‘허술공항’이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근무 기강의 나사가 풀어졌다. 지난 5년간 외부인이 제한구역인 공항 보안 구역에 침입한 사건이 13건이나 된다. 공개되지 않은 크고 작은 보안 사고도 적지 않을 것이다. 공항은 국가의 ‘대문’이다. 최고책임자가 자기 집 문단속하듯 해야 한다는 전직 사장의 지적이 뼈아프다.
항공 테러를 막는 유일한 방책이 바로 이륙 이전에 범인을 잡는 보안검색임을 잊어선 안 된다. 외주에 의존하는 인천공항의 보안 요원 처우가 열악하다 보니 이직률이 높다. 숨어 있는 사각지대까지 찾아낼 수 있는 고도의 숙련도를 갖춘 보안 요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난 1월 중국인 밀입국자를 시설 보수 작업하는 사람으로 오인해 눈앞에서 놓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 적외선 감지 센서 등 첨단장치를 아무리 도입하면 뭐하나. 국가 보안 핵심시설에 걸맞게 국가정보원과 법무부, 국토부, 경찰 등 관련 기관을 아우르는 컨트롤타워를 새롭게 구축하고, 우수한 자질을 갖춘 보안 전문가들을 대거 투입하는 일이 급선무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원칙과 기본을 지키는 것이 안전 사회의 철칙임을 제대로 학습하지 못했다.
jiny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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