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왜곡된 가격결정 <끝>제약사, 대부분 국내 먼저 허가받아
신약가격 美 등 선진국의 40% 수준

2002년 등재된 당뇨치료제 1774원
2014년엔 1정당 784원으로 책정돼
제대로 평가 못받아 ‘투자의욕 저하’


우리나라가 글로벌 신약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신약의 기형적인 가격 결정구조부터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현장에서 제기되고 있다. 새로운 신약을 개발해도 가격이 구약의 가격보다 낮게 평가되는 등 가격 결정구조가 치료적 가치보다는 경제적 가치평가 중심이어서 제약업계의 투자의욕이 저해되고 있다는 것이다. 신약 가치를 반영한 약가제도를 수립하고, 연구·개발(R&D)에 투자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국내의 신약의 최초 등재 가격은 선진국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이의경 성균관대 약대 교수가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출시된 전 세계 신약을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신약의 가격은 미국 등 선진 7개국의 40% 수준이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의 50% 수준이다.

모든 신약의 가격은 전 세계에 공개돼 각국에 동일한 가격으로 공급된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결국 신약의 국내 가격이 40% 수준이면, 글로벌 시장 가격 역시 40%를 넘기 힘들다는 것으로 세계 최초 개발 신약이 글로벌 시장에서 창출할 수 있는 부가가치도 60% 줄어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 제도에서도 제약사가 해외에서 먼저 높은 가격으로 신약 등록을 했다면 국내에서도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국내 제약사들은 신약을 한국에서 처음 허가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쉽지 않다.

국내에서 약값이 저평가되고 있다는 사실은 당뇨병 치료제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난다. 당뇨병 신약의 경우 개발된 순서로 보면 근육과 지방조직에서 인슐린 작용을 증가시키는 ‘티아졸리딘(TZD)’ 계열 약물이 먼저 개발됐으며, 이후 저혈당과 체중증가 등의 부작용을 줄이면서 인슐린 분비를 촉진시키는 DPP-4 억제제가 개발됐고, 이후 포도당을 소변으로 배출시켜 혈당을 낮추는 원리인 ‘SGLT-2억제제’가 이어졌다. 새로운 약물이 개발될수록 신약의 가격이 더 인정받아야 하지만, 국내에서만큼은 신약의 가격이 더 저렴하게 책정됐다. 2002년 등재된 2세대 당뇨병 치료제 TZD는 1정당 1774원, 2008년 등재된 3세대 치료제 DPP-4 억제제는 1정당 1020원, 3.5세대로 평가받는 SGLT-2 억제제는 2014년 등재 시 1정당 784원으로 책정됐다. 반면 동일한 신약이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119.2엔(TZD·1999년), 278.6엔(DPP-4 억제제·2009년), 308.3엔(SGLT-2 억제제·2014년) 등으로 새로운 약일수록 가격이 높게 책정됐다.

한국은 건강보험료 절감 등을 위해 비용효과성(경제적 가치)에 집중해 새로운 계열의 신약일수록 오히려 가격이 낮아지지만, 반면 일본은 유용성(치료적 가치)을 인정해 신 계열의 신약일수록 가격이 높아진다. 제약산업은 기존 치료제와 다른 새로운 작용기전의 신약을 개발하며 발전하고 있지만 국내의 가격정책은 신 계열(새로운 작용기전)의 신약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경우 제약사에서 복합한 비용효과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신약의 치료적 가치는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라며 “결국 많은 비용을 투자해도 제대로 가격을 평가받지 못하는 것으로, 제약산업의 R&D 투자 유인 동기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 제약산업은 다국적 제약업체와의 신약개발 기술격차를 꾸준히 줄여왔다. 1990년대 물질특허제 도입 이후, 원천기술 확보에 나섰고, 1999년 첫 신약 1호 개발 이후 현재까지 26개의 신약이 개발되고 있으며 지난해 한미약품은 8조 원대의 기술수출 성과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제약산업이 이제 혁신신약을 개발하는 단계로 발전했지만, 현재의 가격정책 및 평가기준에서는 혁신신약의 기술적 가치·바이오신약의 안전성 가치·신약 고유의 R&D 투자 가치를 반영할 길이 없다”며 “정부가 미래 유망산업으로 제약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신약의 적정가치 반영을 위한 평가방법과 기준부터 재확립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이용권 기자 freeus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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