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결과’에 짜릿함 vs ‘과정’서 기쁨
‘열정적’ 욕구해소 vs ‘이성적’ 통제
행복이란 각자마다 맞는 방식 있어

결과에 집착한다면 ‘소유냐 존재냐’
경쟁에 시달린다면 ‘그해 겨울은…’
비전 강박증엔 ‘게으름에 대한 찬양’


“행복하세요!”

새해에 늘 주고받는 덕담이다. 딱히 더 좋은 새해 인사도 없지만 왠지 고마움보다 공허함이 느껴진다. 하나마나 한 영혼 없는 덕담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누가 행복해지기 싫어서 행복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어 감동은커녕 괜히 심통이 난다. 게다가 “어떻게 살면 행복해질 수 있는데요?”라고 상대가 되묻는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 아찔함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 담긴 책을 건네는 거다. 영혼 없는 덕담이나 메마른 세뱃돈 대신 이보다 값진 새해 선물이 또 있을까?


그런 책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넘쳐나는 게 행복에 관한 책이지만 오히려 불행해지는 방법을 가르치는 책도 드물지 않다. 성공을 행복과 동의어로 착각하는 자기계발서들이 대개 그렇다. 그럼 어떤 책을 건네야 할까? 고전의 반열에 오른 철학책이 적절하다. 철학자들이야말로 수천 년 동안 행복에 관해 탐구해온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철학자들은 행복에 관하여 어떤 이야기들을 했을까?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행복의 방법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행복은 결과라고 주장하는 이들과 행복은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전자는 삶의 좋은 결과나 성취에서 오는 즐거움을 행복이라고 보지만, 후자는 삶의 좋은 과정이나 체험 자체를 행복이라고 본다.

쾌락주의자 에피쿠로스나 수정된 쾌락주의자인 공리주의자 벤담, J S 밀은 결과를 중요하게 여기며, 중용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나 비판의 철학자 칸트, 존재의 철학자 에리히 프롬, 무소유의 철학자 법정 스님은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들은 중용을 실천하고 자기비판을 하며 무소유나 존재를 지향하는 태도로 삶의 체험을 나누며 사는 삶의 과정을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행복의 방법에 대해서는 이성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이들과 열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이들이 있다. 이러한 주장들 뒤에는 불행의 원인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이 깔려 있다. 열정이나 욕망이 우리 삶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보는 이들은 그것들을 통제하는 이성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이성이 우리 삶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보는 이들은 이성에 억눌린 열정이나 욕망을 해방시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성의 철학자 데카르트나 금욕주의 철학자 세네카는 이성을 중요하게 여기며, 초인의 철학자 니체는 열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행복의 범위에 대해서는 개인의 행복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과 사회의 행복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이 있다. 후자는 불행의 원인을 개인의 탓을 넘어 사회의 구조에서 찾으며, 홀로 행복하게 사는 것보다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것을 더 좋은 것으로 본다. 쾌락의 철학자 에피쿠로스나 자유지상주의 철학자 로버트 노직은 개인의 행복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공리주의 철학자들이나 정의의 철학자 존 롤스나 마이클 샌델은 사회의 행복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누구에게나 통하는 행복의 왕도는 없다. 행복하게 사는 방식은 사는 이의 삶에 따라 제각기 어울리는 방식이 따로 있다. 행복은 맞춤옷과 같다.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모양과 자신의 삶의 모양에 걸맞은 행복과 그 방법이나 범위를 찾아야 한다.

결과나 성취에 대한 집착과 이기적인 무한 경쟁이 우리 모두를 불행하게 만드는 우리 사회에는 아마도 결과보다 과정을, 홀로 행복보다 더불어 행복을 중요하게 여기는 행복 철학이 어울릴 것 같다. 지나친 성취욕이나 이기적 욕망으로 불행한 이들에게는 이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행복 철학이, 삼포 세대란 별명이 있을 정도로 무력감에 빠져 있거나 자신감과 자긍심을 잃고 다른 이의 성공을 시샘하는 불행한 청춘들에게는 열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행복 철학이 어울릴 것 같다.

결과나 성취에 대한 집착 때문에 불행한 이들에게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이나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또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건네주는 게 좋다. 이기적인 무한 경쟁으로 불행한 이들에게는 롤스의 ‘정의론’이나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또는 박완서의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를 권하고 싶다.

지나친 성취욕이나 이기적 욕망으로 불행한 이들에게는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이나 세네카의 ‘인생론’을, 무력감이나 시샘으로 불행한 이들에게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나 그것을 쉽게 풀어쓴 박찬국의 ‘초인수업’을 건네주는 게 좋다. 철학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프롬이나 법정, 샌델이나 박완서, 세네카나 박찬국의 책이 좋다. 지적 호기심이 강하여 본격적인 행복 철학에 도전함 직한 이들에게는 아리스토텔레스, 롤스, 데카르트, 니체의 책을 권해도 좋다. 어느 쪽이든 필자가 쓴 ‘김광석과 철학하기’는 좋은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다.

정글에서 지도 없이 길을 찾기는 매우 어렵다. 삶은 정글이다. 지도 없이 행복에 이르는 길을 홀로 찾기는 매우 어렵다. 게다가 잘못된 지도는 불행으로 이끈다. 섣부른 덕담이나 생각 없는 세뱃돈이 사랑하는 이들을 불행으로 이끌 수 있다. 이번 새해에는 세뱃돈 대신 행복의 지도를 선물로 건네주는 것은 어떨까.



* 덧붙임: 남에게 줄 선물 보따리만 챙기다 보니 스스로에게 줄 선물을 잊었다. 스스로에게 건넬 행복의 지도는 뭘까. 당신의 현재 위치를 가리키는 GPS다. 길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으라는 거다.

빈센트 반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사람을 바보처럼 노려보는 텅 빈 캔버스를 마주할 때면, 그 위에 아무것이든 그려야 한다. 너는 텅 빈 캔버스가 사람을 얼마나 무력하게 만드는지 모를 것이다. (중략) 화가들은 텅 빈 캔버스 앞에 서면 두려움을 느낀다.”

당신도 당신의 텅 빈 캔버스 앞에서 두려움을 느낀다면 버트런드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스스로에게 선물하라. 행복에 대한 욕망과 집착을 내려놓는다면 당신은 지금 이미 충분히 행복하다. 김광식 인지문화철학자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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