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땐 이런 소설

설 연휴 독자들을 위한 소설 리스트를 생각하다 ‘소설이 필요할 때’(RHK)를 떠올렸다. 일상의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이 런던에 설립한 ‘인생학교’에서 ‘문학 치료’ 교실을 운영하는 소설 치료사 엘라 베르투와 수잔 엘더킨이 쓴 책은 우리가 인생에서 만날 상황별 증상별 소설 처방전이 들어 있다. 저자들은 소설이 우리의 증상을 완치시킬 수도 있고, 완화할 수도 있고, 또 우리를 위로할 수도 있다고 했다. 몇몇 상황별 소설 처방을 요약해 전한다.

◇화가 날 때.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84일 동안 배를 타고 나갔지만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노인. 그래도 노인은 유쾌했다. 간결하면서도 잔잔한 서술에 빠져들면 어느새 분을 냈던 일에 초연해진다.

노인과 함께 배에 올라 소년과 바다, 물고기를 향한 노인의 사랑을 보라. 이렇게 됐어야 했다는 후회를 맘속에서 몰아내고 평화와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고귀함으로 채워라. 때로는 너무 멀리 나가기도 하지만 언제나 돌아올 여지는 있다. 노인이 해변의 사자들을 떠올리며 행복해졌듯이 당신도 당신만의 환상을 찾아라. 소설을 읽고 나면 책꽂이에 꽂아두고 화가 날 때마다 펼쳐 보라.

◇스트레스받을 때.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심신을 쇠약하게 만드는 스트레스. ‘나무를 심은 사람’을 읽으며 영혼은 안정을 되찾을 것이다. 늙고 외로운 양치기가 주변에 나무를 심기 시작해 황량한 불모지를 울창한 숲과 풍요로운 땅으로 바꿔 놓는다. 양치기의 마음에 평온을 가져온 것은 노동으로 일군 결과가 아니라 노동 그 자체다. 걷고 땅을 파고 나무를 심고, 지켜보고 돌보고 기다리는 것.

책을 다 읽으면 책을 내려놓고 밖으로 나가라. 스트레스를 이기는 첫 번째 방법은 좋은 소설을 읽는 것이고, 두 번째 방법은 잠시 운동을 하는 것이다. 주머니에 모종삽을 챙겨 오랜 산책을 나가라.

◇일을 자꾸 미룰 때.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사람은 지루함, 불안, 두려움 같은 불편한 감정을 일으키는 일들을 피하려 한다. 불편한 감정들을 회피하려고 바쁠 때 행복과 성공, 즉 인생에서 주인이 될 기회는 지나간다.

이 교훈을 잘 전해줄 이가 ‘남아 있는 나날’의 집사 스티븐스이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집사의 본분을 잊지 않는다. 미스 켄턴이 관심을 보이지만 집사라는 직업에 충실하기 위해 냉정하게 거절한다. 그는 20년이 지난 뒤에야 인생에서 뭔가 잃어버렸음을 깨닫는다. 그에게 남은 것은 좋았던 시절이 남긴 잔해뿐. 지금 미루려는 일들을 끝낼 시간이 무한히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이별로 슬플 때. 닉 혼비의 ‘하이 피델리티’=이별은 힘들다. 비슷한 경험을 가진 곁에 있어줄 친구로 로브를 추천한다. 로브는 록 음악에 바치는 헌사인 ‘하이 피델리티’에 나오는 음악광이다. 사랑하는 애인이 떠나자 로브는 자신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 다섯 번의 이별을 떠올리며 관계와 삶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그들을 다시 찾아 나선다.

로브가 깨달은 뼈 아픈 진실 중 하나는 이별은 아무리 많이 해도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사실. 로브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별의 종류를 거의 모두 살펴볼 수 있다. 로브와 당신이 과거에 저지른 실수로부터 얻은 교훈을 가슴 깊이 받아들여라.

◇은퇴할 때. V.S. 나이폴의 ‘도착의 수수께끼’=새 출발을 위해 ‘도착의 수수께끼’를 읽어라. 영국 식민지였던 인도를 떠나 또 다른 식민지인 트리니다드섬으로 이주해온 이민자의 후손이었던 저자는 자신이 어떻게 바로 제국주의자들의 땅에 힘겹게 뿌리를 내려 두 번째 인생을 맞이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평생 처음으로 ‘집’이라고 할 만한 곳에 ‘도착’했는지를 이야기한다.

작품은 인생을 되돌아보고 감춰진 가능성을 끄집어내 즐기라고 등을 떠민다. 나이폴이 멋지게 해냈듯 당신도 인생의 소소한 것들에 집중하라. 은퇴했다고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보는 법까지 배우지 말라는 법은 없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최현미

최현미 논설위원

문화일보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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