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얘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문학사상’의 주간을 13년 정도 했고, 이후 문학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만.
“아니에요. 문학은 내가 얼마나 많이 해요. 내가 대학에서 한 강의 노트만도 신라 향가부터 어마어마하지. 최근에 ‘언어로 세운 집’, 20년 전에 쓴 것인데 다시 펴내서 1만 권 이상 나가잖아요. 그건 희망이 있는 거예요. 문학이 아니라 문단(文壇)하고 작별을 한 것이죠. 나는 문단이라고 안 하고 문당(文黨)이라고 해요. 거기는 당이야. 잘못 발을 들이면 아무것도 못해.”
―평단에서는 선생님의 문학적 성과에 대한 본격적인 평(評)이 많진 않습니다.
“그건 당연하죠. 나는 이념 싸움을 안 했거든요. 한국 문단이 정치를 했지, 문학을 했나요. 그걸 안 했기 때문에 그런 거지요. 내가 버린 것이 아니에요. 나는 문단에 끼고 싶지도 않고, 그런 것을 평단의 기준으로 삼지 말라고 김수영과 논쟁을 한 것이죠. 사람들은 김수영 시에 내가 ‘불온시’라고 붙인 줄 알아요. 김수영이가 불온시라는 말을 썼어요. 그렇게 잘못 떠도니, 나중에는 내가 무슨 독재를 옹호한 것으로 곡해돼 있어요. 일본의 가라타니 고진은 좌파 문학평론가로 나와 반대편에 선 사람 아닙니까. 그가 나를 인정하잖아요. 30년이 지나서.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하는 것 보았어요?”
이어령은 어느 글에서 “나 자신의 문학은 실제의 자신이 세상에 의해 위조된 자신에게 대항했던 기록”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논설위원 시절 경향신문에 연재한 첫 ‘한국인론(論)’인 ‘흙 속에 저 바람 속에’가 출간됐을 때, 출판사 직원 한 명이 붙어 온종일 인지를 찍었다는 얘기는 전설처럼 전한다. 책을 읽을 만한 한국인 치고 그의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그는 36세에 12권짜리 전집을 낼 정도였고, 이후에도 최근까지, 자신도 정확히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저서를 냈다.
엄주엽 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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