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국제유가가 급락하면서 우리의 에너지 안보에 청신호가 켜진 듯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96%를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에너지 수급 사정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특히, 소득이 늘면서 전기 소비가 늘어나고, 이를 충당하기 위해 발전소들이 추가로 건설되고 있다. 전력 공급을 안정적으로 하는 것은 생활의 질을 높일 뿐 아니라 국가 경제 발전에도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원자력 발전은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함께 보다 저렴한 전기 사용에 기여했다. 이러한 원자력 발전의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는 원자력 발전으로부터 발생하는 사용후핵(核)연료를 어떻게든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 가동 중인 24기의 원전(原電)에서는 매년 약 750t의 사용후핵연료가 발생한다. 그런데 원전 내 임시 저장시설은 저장용량 대비 이미 70% 이상 차 있다.
공론화위원회의 권고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원전별로 짧게는 2016년, 길게는 2038년에 모두 포화 상태에 이른다고 한다. 사용후핵연료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로 장기간 많은 열과 방사능을 방출하기 때문에 냉각과 차폐 등을 통한 체계적이고 안전한 관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우선 단기적으로 원전 내 저장시설 포화 문제를 해결하되 최종적으로 영구처분을 위한 장기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한편, 경주 중저준위 방폐장 부지 선정과 준공에만 29년이 걸렸던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외국의 경우도 짧지 않은 기간이 걸렸다. 결국, 사용후핵연료 처리의 방법과 결정 시기를 더는 미룰 수 없는 시점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정부는 2013년 10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를 발족해 2015년 6월까지 약 20개월 동안 국민과 함께 사용후핵연료 문제의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공론화 과정을 거쳤다. 현재 정부는 공론화위의 권고안을 토대로 사용후핵연료 관리를 위한 기본계획을 마련 중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사용후핵연료 기본계획안은 국민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고 무엇보다 때를 놓치지 않도록 시급히 마련해야겠지만, 이에 대한 후속 조치로 구체적인 법과 제도의 마련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경주 방폐장 사례에서도 확인했듯이, 법제화는 국민과 정부 사이의 신뢰를 형성하는 데 보강재 역할을 한다.
사용후핵연료 관리 대책을 마련하는 데 있어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는 선진국들의 사례만 보더라도 법제 마련의 중요성은 잘 알 수 있다. 세계 최초로 영구처분 부지 건설 승인을 받아 현재 가장 모범적으로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핀란드는 1983년에 처분 기본방침을 확립했다. 그리고 프랑스의 경우 2006년 사용후핵연료관리법, 일명 ‘바티유법’ 제정을 통해 정부의 확고한 정책 의지를 표명함으로써 사용후핵연료 관리 사업을 원활하게 추진할 수 있는 배경이 됐다. 명확한 원칙에 입각한 의사결정과 사업의 추진이야말로 체계적인 실행력과 국민의 높은 신뢰감을 확보할 수 있는 좋은 사례임이 틀림없다.
비록 뒤늦은 감은 있지만, 우리나라도 이제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의 본격 추진을 앞두고 있다. 사용후핵연료의 안전한 관리를 위한 확실한 대안을 마련하고 이에 대한 철저한 준비를 통해 국가 발전은 물론 미래 세대에 대한 우리 세대의 책임에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기본 정책 마련에 못지않게 구체적인 법과 제도를 투명하게, 그리고 조속히 마련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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