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정책위의장 진기섭과 원내총무 오성호는 자타가 공인하는 서동수의 당내 측근이다. 둘 다 3선에 50대 초반의 비교적 참신한 이미지의 정치인으로 고(故) 한대성 대통령이 서동수에게 추천해준 브레인이다.

오후 9시 반, 둘은 인사동의 한정식당 방 안에서 소주를 마시고 있다. 상 위에는 20가지가 넘는 찬이 놓였지만 거의 손도 대지 않았다.

“처칠을 봐.”

술잔을 든 진기섭이 오성호에게 말했다. 소주를 두 병째 마시는 중이었지만 둘의 얼굴은 멀쩡하다.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웅 아닌가? 그런데 전쟁 끝나고 나서 치러진 선거에서 낙선했다고. 국민들은 전시(戰時)가 끝났으니까 새로운 시대의 지도자를 원한 거야. 그걸 참고해야 돼.”

“염병하네.”

쓴웃음을 지은 오성호가 한입에 소주를 삼켰다.

“영국 국민들을 아주 높게 평가하고 계시구먼. 다 헛소리, 우리 국민 수준도 그쯤 돼. 문제는 다른 곳에 있어.”

“뭔 소리야?”

“누가 전시, 평시 지도자 가려서 뽑았단 말이야? 그냥 처칠한테 질려서 다른 놈 뽑은 거지. 게으르고, 독선적인 성격도 다 드러났기 때문이야.”

“이봐. 당신은 요점 흐리는 데는 선수지만, 내 말 들어봐.”

“무슨 말인지 잘 아니까 처칠 이야기 하지 마. 서 장관은 처칠하고 다르니까.”

“민족당 전략이 먹히고 있단 말이야.”

정색한 진기섭이 오성호를 보았다.

“방법을 만들어야 돼. 방심하면 안 된다고.”

오성호가 이제는 잠자코 잔에 술을 채운다. 아직 연방대통령 선거는 1년 반이 남았지만 남북한은 선거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북한이 공산당 대신 민생당이란 정당을 세우고 한국의 야당인 민족당과 공공연하게 연대하고 있는 것도 그 열기에 부채질을 한 셈이 되었다. 민족당은 지금까지 지원해서 북한의 민생당 창당을 도와준 것이다. 이제 북한 공산당은 민생당이란 더 단단한 조직으로 바뀌었다. 당원만 300만 명인 조직이다. 그렇다고 한국당이 북한에다 경쟁 조직을 만들어 놓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때 오성호가 말했다.

“내가 들은 말이 있는데…….”

주위를 둘러본 오성호가 말을 이었다.

“일본이 민족당을 도와주고 있다는 거야.”

“응?”

놀란 진기섭이 숨을 들이켰다.

“일본이?”

“그래. 미국도.”

진기섭의 어깨가 천천히 내려갔다. 소리 없이 숨을 품은 것이다. 가능한 일이다. 서동수는 중국과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다고 알려졌고 실제로도 그렇다.

“세상에.”

쓴웃음을 지은 진기섭이 잔에 소주를 채웠다. 적의 적은 우군이기는 하다. 그렇다고 일본의 지원을 받다니. 머리를 든 진기섭이 오성호를 보았다. 오성호는 정보위 소속이어서 정보기관 관계자와 긴밀하다.

“어떻게 도와준다는 거야?”

“자세한 내막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평양에서 일본 특사와 자주 접촉하고 있다고 했어.”

“미국은?”

“일본의 배후에 있지. 어쨌든 태평양 방위선의 서쪽 끝은 일본으로 밀어붙이고 있으니까.”

“1950년 애치슨 라인에서 70년 가깝게 한 발짝도 진전되지 않았구먼.”

진기섭이 탄식했다. 한반도가 열강에 둘러싸여 있는 것도 100년 전과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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