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청년 실업률 9.2% 역대 최고… 씁쓸한 졸업식

‘지옥문 입성’‘눈물흘릴 일만’… 자조적 메시지 현수막 늘어
취업난 등 암울한 현실 반영… “아픔을 웃음으로 승화해”


오는 18일 대학 동아리 선배의 졸업을 앞두고 졸업 기념 현수막 제작을 업체에 맡긴 이모(여·24) 씨는 현수막에 넣을 문구로 ‘이제 백수라고 전해라’를 의뢰했다. 이 씨는 “선배가 취업이 되지 않아 졸업을 마냥 축하해줄 수만은 없었다”면서 “동아리 친구들이랑 졸업 이벤트를 고민하다 차라리 현실을 정면 돌파해 슬픔을 재미로 승화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고 현수막 문구를 정한 배경을 설명했다.

본격적인 대학 졸업시즌이 다가오면서 취업난 등 암울한 현실을 반영한 졸업식 축하 문구들이 쓴웃음을 짓게 하고 있다. 과거 ‘축 졸업’ ‘졸업은 새로운 인생의 시작’ 등 판에 박힌 문구들이 주조였다면 현재는 청년 실업 등을 희화화한 문구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12일 현수막 제작 업체 등에 따르면 ‘지옥문 입성’ ‘학교에서 그만 보자’ ‘백수대열합류’ ‘눈물 흘릴 일만 남았다’ ‘어서 와, 백수는 처음이지?’ 등 눈길을 끄는 문구들을 내세워 졸업 현수막 제작 의뢰 광고를 하기도 한다.

서울 중구 신당동 현수막 업체 관계자는 “졸업 시즌에 ‘행복 끝 백수 시작’ 등과 같은 가슴 아픈 문구가 담긴 플래카드를 제작해달라는 학생들이 있다”며 “예전에 비해 사회에 대해 비관적이고 암울한 메시지를 주문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강남의 또 다른 현수막 업체 관계자는 “졸업을 축하하는 것보다 걱정과 우려를 나타내는 메시지가 예전보다 확실히 늘었다”며 “청년들이 취업에 실패한 고통을 웃음으로 표현하려는 씁쓸함 같은 게 배어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서울 명문 사립대를 졸업한 김모(27) 씨는 “학과 후배들이 ‘7년 만에 졸업, 이제 뭐 하지?’라는 현수막을 단과대 입구에 걸어놨었다”며 “부모님도 같이 보셨는데 웃으시면서도 씁쓸해하셨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9.2%로, 지난 1999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김수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졸업은 학교에서 공부를 마친 것을 축하하는 것”이라며 “현실이 슬프긴 하지만 취업하지 못한 사람도 주인공이 돼 아픔을 웃음으로 승화시킨다는 측면에서 오히려 성숙한 졸업식 문화로 바라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박효목 기자 soarup624@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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