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하지 않는 사람이 있나?”

고정규가 쓴웃음을 짓고 물었다. 서교동의 아선장, 이곳은 도가니탕으로 유명한 식당으로 고정규의 단골집이다. 오후 10시, 고정규는 장신에 윤곽이 뚜렷한 용모의 호남으로 서울에서 4선을 했다. 5000억 원대 재산을 물려받은 재벌가의 장남이었지만, 운동권 경력이 있는 60세의 장년으로 특히 여성들에게서 인기가 많다. 고정규의 깨끗한 사생활 때문이다. 민족당 대표가 된 것은 6개월 전이었는데 민족당은 그때부터 고정규를 중심으로 대선체제에 들어갔다고 봐도 될 것이다. 고정규가 앞에 앉아 있는 최영길과 조태문을 보았다. 둘은 고정규의 심복으로 좌영길, 우태문이라고 불릴 만큼 신임을 받고 있다. 최영길은 당 대표 비서실장으로 재선의원이며 조태문은 최고의원이다. 방 안에는 셋뿐이었지만 고정규가 주위를 둘러보는 시늉을 하더니 말을 이었다.

“서동수는 친중이야, 누가 봐도 사대주의자지. 아무리 미사여구를 동원하고 한랜드 업적을 광고해도 그놈 뿌리는 중국이라고.”

“그렇습니다.”

조태문이 둥근 얼굴을 펴고 웃었다. 웃을 때 하회탈처럼 호인 인상이 되지만 전략가다. 당에서는 그를 조조라고 부른다. 조태문이 말했다.

“선거 때가 되면 서동수에 대한 환상도 식을 겁니다. 1년 반이나 남아 있으니까요, 그때쯤이면 질리게 됩니다.”

“정치는 현실이야.”

맥주잔을 들면서 고정규가 말했다.

“뭐? 한반도에서 중국 3성을 지나 한랜드와 러시아를 잇는 한로드? 도대체 그것이 다 우리 거야? 중국이 딱 한 발짝만 막아도 끝이야. 러시아가 노, 하면 끝장이라고. 이것들이 사기를 치고 있어.”

“중국이나 러시아와의 트러블 한두 차례면 서동수 거품은 걷힙니다.”

조태문이 거들었다. 둘이 주고받는 동안 최영길은 빈 잔에 술만 채워주고 있다.

그때 고정규가 최영길에게 물었다.

“최 실장, 일본에서 대마도 문제로 점점 더 열을 받는다면서?”

“예, 나카무라 씨가 그냥 넘길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는군요.”

나카무라는 자민당 간사장이다. 술잔을 든 고정규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서동수가 실수를 하기 시작한 거야.”

“그렇습니다.”

조태문이 다시 나섰다.

“정치적인 안목이 없는 인간들은 언젠가 제 발등을 찍게 되지요. 사업가로 있을 때나 행정가로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 됩니다.”

서동수가 괌에서 미국 대선후보 윌리엄 크리스에게 대마도 수복 이야기를 꺼낸 것을 말하고 있다. 그 이야기는 미국에서 바로 일본 정부 고위층으로 전해졌는데 그것으로 서동수는 일본 정부의 공적(公敵) 1호가 되었다. 적의 적은 우군이 되는 것은 이곳에서도 적용된다. 일본 측은 즉각 고정규 측과 접촉했고 정보를 공유하게 되었다. 그때 최영길이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고정규를 보았다.

“이런 식으로 시간이 지나면 한국의 연방대통령 후보 선거에서 우리가 이길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럴 가능성도 있지요.”

맞장구부터 친 조태문의 얼굴이 잠깐 일그러졌다가 펴졌다. 그때가 되었을 때를 떠올린 것이다. 연방대통령 선거 한 달 전에 남북한은 각각 연방대통령 후보를 선출하게 된다. 민족당은 당연히 고정규가 나서겠지만 현 상황에서는 서동수가 70대 30으로 압도적이다. 그런데 그것이 뒤집히면 고정규가 북한 민생당의 김동일과 붙게 되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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