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세 김지숙 열연 ‘바냐 아저씨’
중견연극인집단의 첫 단독 공연
‘1000원짜리 연극’ 질적저하 속
관록의 배우 귀환 “소극장 부활”

‘이수일과…’ 배우들 평균 65세
연출·제작진까지 중년들 ‘접수’
“고령화 시대 문화공간 절실해”
베이비붐 세대 연극인 팔 걷어


“오늘 제 연기 어땠나요?”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아트원씨어터 2관, 연극 ‘바냐 아저씨’의 커튼콜에서 배우 김지숙이 물었다. 중견연극인창작집단(대표 김지숙·이하 중창단)의 첫 단독 공연을 응원하기 위해 만원 객석에 앉아있던 박원순 서울시장은 대답 대신 두 엄지를 ‘척’하고 치켜세웠다. 바냐 아저씨에서 젊고 아름다운 엘레나 역을 맡은 김지숙은 올해 60세. 빨간 립스틱에 하이힐, 치맛자락을 살짝 움켜쥐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극장을 가득 채운다. 전성기 모습 그대로다. 엘레나뿐 아니다. 바냐 역의 기주봉(61)을 비롯해 이날 무대 위에선 이봉규(67), 고인배(62), 이용녀(60) 등 관록의 배우들이 열연을 펼치며 여전한 ‘청춘’을 과시했다. 모두 1980~1990년대 국내 연극계를 일궜던 주인공들이다.

100세 시대. ‘젊음의 거리’ 대학로의 주인이 바뀌고 있다. 20~30대를 겨냥한 흥미 위주, 선정적인 저가(低價) 연극이 성행하며 상업 공연 판으로 변질된 대학로를 ‘시니어’들이 접수하고 있는 것.

통상 3만 원대를 유지하던 대학로 연극은 최근 2~3년 새 만 원 이하로 떨어졌다.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출구 주변에서 만나는 호객꾼 대부분이 만듦새가 조악한 ‘저가 연극’을 판매한다. 경쟁이 붙다 보니 최근 소셜커머스에는 1000원짜리 연극이 등장했다. 시니어 배우들은 연극의 ‘저렴한’ 상품화를 지양하고 탄탄한 공연 문화의 근간인 ‘소극장 부활’과 고령화 시대에 보조를 맞춘 ‘시니어 문화 부흥’을 전면에 내세웠다. 연극계의 자발적인 정화 운동이기도 하며, 여전히 수적으로도 많고 왕성한 ‘베이비붐’ 세대 연극인들이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한국연극배우협회(이사장 최일화)에 따르면 2000여 명의 회원 중 절반 이상이 50~60대다. 40대(20%)와 70대 이상(10%)을 합하면 중·장년 배우가 전체의 80%를 차지하는 셈. 20~30대 배우는 20%에 불과하다. 약 5000명이 소속된 한국연극협회도 40~60대 회원이 72%, 20~30대 회원이 23%인 걸로 나타났다. 다만, 전체 회원(약 3600명)의 30%가 연출이나 극작 등 제작 인력으로 구성된 서울연극협회의 경우 40대(39%), 30대(26%), 50대(19%) 순으로 30대 비율이 다소 높았다.

안톤 체호프의 4대 희곡 중 하나인 ‘바냐 아저씨’는 이윤택(64) 연출의 장기인 ‘블랙 코미디’로 재해석됐다. 여기에, ‘옛 배우’들의 내공이 어우러져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무엇보다, 45~70세 배우 100여 명으로 구성된 중창단의 첫 단독 공연이라는 데 더 의미가 있다. 출연자들은 대학로의 급속한 상업화로 현장에서 한동안 소외됐었다. TV 드라마와 영화 등에 집중하다 최근 ‘정통 연극’으로 소극장을 부활시키겠노라며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있다.

김지숙 중창단 대표는 6일 바냐 아저씨의 마지막 공연을 마친 후 “대학로를 바꿀 작은 운동이 이제 막 시작됐다”고 말했다. 지난 1월 27일부터 열흘간 공연한 바냐 아저씨는 ‘왕년의 스타’를 추억하는 중·장년층과 가벼운 대학로 연극에 염증을 느낀 20~40대 관객들로 연일 매진 사례를 기록했다. 16일부터 3월 10일까지 대학로 SH아트홀에서 앙코르 공연을 진행한다. 02-765-9523

배우뿐 아니라 연출 및 제작진까지 전원 ‘시니어’로 구성된 공연도 대학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20~30대 위주의 공연 문화를 폭넓은 연령층까지 확장시킨다는 목표다. 이종훈(66) 전 서울시립뮤지컬단장이 연출을 맡은 악극 ‘이수일과 심순애’(작은 사진)는 평균연령 65세가 모여 만든다. 이른바 ‘시니어의 시니어에 의한 시니어를 위한’ 작품. 바냐 아저씨에 이어 지난 11일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개막한 이 악극은 원로연극인 모임 올드앤와이즈씨어터가 제작했다.

이 연출은 “노인 인구가 늘고 있지만 대책은 미흡하다. 특히, 시니어를 위한 문화공간은 전무하다”며 “원로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직접 나섰다. 일종의 ‘시니어 반란’”이라고 강조했다.

20대 등장인물을 소화할 배우들은 정현(71), 김재건(68), 임일애(64) 등 연극·뮤지컬로 수십 년 활동한 베테랑이다. 최종혁(70) 작곡가를 비롯해 분장(손진숙·62)과 조명(이상봉·62) 등도 60~70대가 담당한다. 이 연출은 “대학로에서 30~40년 일한 인력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시니어 전용 공연장이나 카페 등 고령화 시대에 걸맞은 문화 공간이 절실하다”며 “이번 공연이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공연은 28일까지. 1544-1555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박동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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