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만큼 정치에 관해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국민도 드물 것이다. 오죽하면 세 사람 이상 모인 자리에서는, 종교·교육 이야기와 더불어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했을까. 이렇게 정치 이야기가 국민적 ‘오락’이지만 우리 국민은 정치적 쟁점이나 정책적 이슈에 대해 얼마나 다양한 지식을 가지고 있을까? 여러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그리 많은 정치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지역구 국회의원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유권자도 믿기 어려울 만큼 많다. 그러니 복잡한 정책 이슈는 말할 것도 없고 지역구 의원이 어떤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 알 턱이 없다.
어찌 보면 보통 유권자들의 이런 정치적 무지(無知)는 매우 당연하다. 정치적 정보를 얻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하지만 이런 정보 비용에 비해 내 한 표가 선거의 결과를 좌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결국, 합리적인 유권자라면 후보나 정당의 공약에 대해 굳이 알려고 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문제는 무지할 경우 왜곡된 정보에 휘둘릴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지금 이러한 우려는 총선을 앞두고 각종 왜곡된 정보가 유포되면서 현실화하고 있다. 이 가운데 경계해야 할 대표적인 ‘정보’가 하루에도 몇 차례씩 문자 메시지를 통해 인터넷 링크가 전달되는 ‘의원 평가’ 정보다.
사실 개별 의원의 실적을 평가해 순위를 매기는 일은 국회 전체에 대해 평가하는 것과는 달리 매우 복잡하고 미묘해 한두 개의 단순한 지표로 정량평가하면 사실을 오도(誤導)할 가능성이 크다. 국회의원 개인의 실적을 평가할 수 있는 좋은 성과지표가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을 지표로 삼아야 할지도 확실하지 않고, 나아가 이런 개별 지표들에 어떤 가중치를 부여해 종합해야 할지도 분명하지 않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한동안 법안 발의 건수로 국회의원을 평가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분명히 의미 있는 지표였지만, 이제는 더 이상 좋은 척도가 아니다. 많은 의원이 제출 법안 수 늘리기에만 골몰한 탓이다. 내용도 모르면서 빌붙어 이름 올리기(이래서 자신이 발의한 법안을 부결하는 ‘웃픈’ 상황도 빚어진다), 서로 법안 발의 품앗이하기, 글자 몇 자만 바꾸는 개정안 내기(이 경우 통과 가능성도 크다), 폐기 법안 재활용하기, 남이 제출한 법안 베끼기(그래서 나중에 하나의 안으로 통합되는 유사 법안이 많다) 등 다양한 수단이 이용된다. 그 결과 대를 거듭할수록 의원의 발의 법안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지만, 입법 쓰레기도 폭증한다.
그러면 가결 법안 수를 보는 것을 어떨까? 이것도 그 자체만으로는 좋은 지표가 결코 아니다. 숫자만 가지고는 법안의 중요도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중요한 법안이라도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여야가 합의하지 않으면 통과되지 않는 반면, 몇 개의 자구만 수정한 개정 법률안은 쉽게 통과된다.
상임위원회와 본회의 출석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예전에는 의미 있는 지표였지만 지금은 아주 예외적인 의원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출석률이 높다. 출석률이 지표로 쓰이는 것을 의원들이 알고 그에 맞춰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소한 출석률 차이를 가지고 순위를 매기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출석해서 어떤 발언을 하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막말 발언 같은 일부 순위를 제외하면 많은 정량적 의원 평가지표는 여러 다른 정성적 평가와 함께 고려될 때에만 의미를 갖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선 시즌을 맞아 무수한 단체가 단순무식한 의원 평가표를 내놓고 다양한 매체가 이를 앞다퉈 싣고 있다. 이는 다시 정치인들에 의해 교묘하게 편집돼 유권자에게 전해진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이런 정보는 유권자의 판단을 오도할 목적을 지닌 거짓 정보(misinformation)일 확률이 높다.
결국, 거짓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필요한 것은 유권자들이 지금보다 더 깨어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요체는 공직자로 하여금 국민에 대해 책임지게 하는 것이다. 공직자의 책임을 묻는 거의 유일한 제도적 수단이 선거이다. 무지해선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스스로 지배자가 되려고 하는 인민이라면 마땅히 지식이 부여하는 힘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제임스 매디슨의 말을 상기(想起)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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