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남북 공동선언 이후 20여 년 동안 한국에서는 ‘핵(核)무장’은 물론 그에 대한 논의 자체도 금기시됐다. 그러나 북한은 한순간도 쉬지 않고 핵무기를 개발해왔다. 이미 4차례에 걸친 핵실험으로 핵탄두의 실전 배치가 현실적 위협으로 다가왔다. 비핵화 공동선언은 이미 실질적으로 파기된 지 오래다. 이런 주적(主敵)을 앞에 두고 ‘핵무기는 핵무기로 대응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되지 않는다면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정몽준 전 여당 대표를 비롯, 개인 차원에서 제기되던 핵무장론이 15일 집권당 원내대표의 국회 연설을 통해 구체화한 것은 늦었지만 의미 있는 일이다.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나, 우리도 핵을 갖되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동시에 폐기하는 ‘조건부 핵무장’ 등 자위적 차원의 억제 수단을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다만, 여권 내부에서 조율되지 않는 등 집권세력의 의지가 제대로 실리지 않은 것으로 비쳐 안타깝다. 김무성 대표는 “당론이 아니라 개인 의견”이라고 격하했다. 국정을 책임진 정부·여당의 입장을 고려하더라도 한민구 국방장관이 “북핵에 대한 국민적 분노, 아쉬움 측면에서 그런 말씀이 나오는 것”이라는 식으로 반응한 것은 국방 책임자로서 부적절한 인식과 발언으로 보인다. 여당의 강력한 대북 대응 의지를 빌려서라도 적의 도발 의지부터 꺾어놓겠다는 단호함과 결기가 있어야 하는데, 국방장관인지 안보 비평가인지 알기 어려울 지경이다.

핵무기는 핵무기로 대응해야 하며, 핵에 상응하는 강력한 수단이 있을 때에만 핵을 없애는 협상도 가능하다는 것이 냉엄한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모든 선택이 그러하듯, 핵무장론에도 득과 실이 공존한다. 그러나 이것이 논의 자체를 하지 말자는 근거가 될 순 없다. 국민 여론도 지지하고 있다. 더는 쉬쉬할 일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공론화를 시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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