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는 사망한 상태로 발견될 당시 잠옷을 입은 채 욕조를 가로질러 배를 위로 하여 오른쪽 다리는 욕조의 약간 왼쪽 부분, 왼쪽 다리는 욕조의 중앙 부분, 머리는 욕조의 오른쪽 안쪽 부분에 위치한 채 대각선 방향으로 누워 있었는데, 하체는 허벅지 부분이 욕조의 바깥쪽 턱 부분에서 걸쳐 있고, 무릎은 접힌 채로 무릎 이하 부분이 욕조 바깥에 나와 있었으며, 발바닥은 욕실 바닥을 향하여 있었으나 욕실 바닥에 닿지는 않았으며, … 피해자의 머리는 욕조 안쪽 오른쪽 면에 머리 뒷부분이 닿은 채 오른쪽 볼 아래가 빗장뼈나 가슴에 의하여 눌릴 만큼 심하게 접히면서 전체적으로 왼쪽으로 고개가 돌아가 있었으며, 오른팔은 펼쳐져 있던 반면 왼팔은 접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012년 선고된 대법원의 판결문 중 일부다. 여러 번을 읽어도 사망 당시 피해자의 상태를 잘 알 수가 없다. 추리소설 작가가 이 장면을 묘사했다면 훨씬 알기 쉽게 표현했을 것이다.
대법원에서 하급심에 이르기까지 법원의 판결문 중에는 난수표처럼 작성된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처음 법학을 공부하는 학생뿐만 아니라 수십 년 동안 법학을 공부한 학자들도 판결문을 여러 번 읽어야 겨우 그 내용을 알아낼 수 있다. 쉬운 내용을 어렵게 묘사하는 대표적인 글이 판결문이라고 할 수 있다.
어려운 판결문은 법원과 국민 간의 소통을 방해하고 사법부(司法府)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이 판사들에게 판결문 작성 지침서를 만들어 돌렸다. 그 내용은, ‘한 문장은 세 줄을 넘기지 말고, 어려운 한자어를 일상어로 대체하고, 그림이나 목차를 넣는 등의 방법으로 판결문의 구성을 알기 쉽게 하라’는 것 등이다.
만시지탄이지만 바른 방향 설정이다. 이러한 지침에 따르면 위 판결문도 매우 알기 쉽게 작성됐을 것이다. 그런데 판결문을 쉽게 써야 한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적돼 온 사항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잘 고쳐지지 않고 있다. 그 이유 중에는 법률 용어 자체가 어렵다는 것도 있을 것이다. 판결문이 쉬워지기 위해서는 법률 용어를 알기 쉽게 바꿔야 한다. 이 때문에 법제처에서는 법률 용어를 알기 쉬운 용어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는 판사들뿐만 아니라, 모든 법조인이 법률 문장을 쉽게 표현하는 노력을 충분히 기울이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경찰이나 검찰의 조서(調書)에도 ‘우권으로 피해자의 좌측 안면부를 3회 타하여’라고 기재한 대목이 있었다. ‘오른 주먹으로 피해자의 얼굴을 3번 때려’라고 표현하면 될 것을 어렵게 표현하고 자부심을 느꼈던 것이다. 법학 공부를 시작하는 학생들조차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성 법조인들의 잘못된 태도를 모방한다.
사람이 말을 하는 것은 상대방과 소통하기 위함이다. 소통을 위해서는 상대방이 자신의 말을 잘 알아들어야 한다. 상대방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은 말한 사람이 공연히 헛수고를 했다는 증거다. 자신의 권위에 대한 증거가 결코 될 수 없다.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한다’는 격언이 있다. 이 격언대로 한다면 판사의 판결문은 국민과 소통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따라서 판결문은 알기 쉬워야 한다. 어려운 내용을 어렵게 표현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 반면 어려운 내용을 쉽게 표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나, 이것이야말로 국민에게 사법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갖춰야 할 소통의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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