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갑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가 지난 1월 26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서울대암연구소 내 한국세포주연구재단 연구실에서 세포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박재갑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가 지난 1월 26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서울대암연구소 내 한국세포주연구재단 연구실에서 세포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박재갑 국제암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한국세포주연구재단, 한국세포주은행, 담배없는세상연맹, 한국담배제조및매매금지추진운동본부, 글로벌문화경제포럼, 한국종교발전포럼. 모두 암 전문가와 금연 운동가로 유명한 박재갑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가 만든 단체다. 그의 명함 뒷면에는 그가 만든 6개의 단체가 빼곡히 적혀 있다. 현재도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의 활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서울대암연구소 박 교수의 연구실에는 서예, 그림, 사진 등 그의 작품들이 가득했다. 개인전을 열 만큼 전문가 수준의 작품이다. ‘만능 탤런트’다.

실제 그는 그동안 살아온 삶에서 항상 다양한 재능을 발휘해왔다. 서울대 의대 교수, 서울대암연구소장, 국립암센터원장, 국립중앙의료원장 등 대한민국 의료기관의 중추역할을 맡아오면서 세포주은행, 국가암검진사업, 금연운동, 운동화출근생활속운동 등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를 추진해 성과를 냈다. 박 교수는 “어찌하다 보니 그리됐다”고 겸손해 했지만, 항상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그의 열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박 교수를 1월 26일 서울대암연구소에 위치한 한국세포주연구재단 연구실에서 만났다. 의사가 된 계기부터 물어봤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 저에게 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배 곯지 않으려면 공부 열심히 해라.’ 당시 충북 청주에서 양조장을 운영하셨으면 잘사는 집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 자식만큼은 배를 곯지 않기를 원하셨던 겁니다. 아버지는 일제강점기도 겪었고, 전쟁도 경험해보시는 등 배고픈 시절을 겪으신 세대입니다. 대학에 진학할 때가 되니 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이 바뀌어도 배를 곯지 않으려면 기술이 있어야 한다. 의사가 되면 밥은 굶지 않을 거다.’ 세상이 바뀌어도 병원은 필요하니 의사는 밥을 굶지 않는다는 말씀에 따라 의대에 진학하게 됐습니다.”

외과를 전공하게 된 계기도 비슷했다.

“당시 제 고향 청주에는 한의원들이 많았습니다. 아버지와 형들은 내과를 전공하면 많은 한의사와 경쟁해야 한다며 외과를 추천하셨습니다. 한의사가 칼 들고 수술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면서 외과를 해야 경쟁률이 적다는 겁니다. 저는 형님과 아버지 말씀을 하늘같이 따랐습니다. 무조건 복종했었지요. 대장은 왜 전공했느냐. 저를 지도하셨던 교수님께서 위암을 전공하셨는데, 그분이 제게 ‘위암을 하는 내가 아직 젊으니 너는 우리 과에 없는 대장암을 해라’고 하셨지요. 윗사람이 정해준 겁니다. 그러니까 저는 의대도 부모님 뜻, 외과도 부모 형님 뜻, 대장암은 지도교수님 뜻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두각을 나타냈던 자리에 대해서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맡게 됐다고 했다. 성과를 내게 된 것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것이 이유라며 겸손해 했다.

“저는 원래 대학교수가 되려 했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우수한 사람도 아니고, 대학 때 공부를 열심히 하지도 않았죠. 지도 교수님이 과장이 되면서 저를 대학 전임강사를 시켰습니다. 내 마음속은 늘 불안했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무슨 교수라는 거지.’ 그러던 차에 학장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서울대의대 교수들이 똑똑하다고 말들을 많이 하고, 이것저것 많이 하는데 정년이 되면 이뤄놓은 것이 하나도 없다. 하나라도 제대로 해라.’ 그래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나같이 별 볼 일 없는 놈이 교수까지 됐는데 그러면 진짜 하나를 해야 한다. 그러면 세포주를 만드는 것은 내가 한번 해볼 수 있겠지 하고 시작한 것이 지금의 한국세포주연구재단의 한국세포주은행입니다.”

세포주은행은 암, 유전병 등의 각종 세포주를 수집 보관하며 연구나 치료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기관이다. 1982년 박 교수가 서울대의대 암연구소에서 세포주 수립을 시작하고 1987년 은행 업무를 시작한 것이 처음이며, 현재는 보유하고 있는 세포주가 전 세계 세포주은행 가운데 5위 수준일 정도로 성장했다. 박 교수팀이 수립한 세포주가 항암제 약효검사 세계 세포 시장의 7.5%를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자체 개발한 세포주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면에서 한국세포주은행은 독보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81년에 전임강사가 됐는데 지도교수님의 지시로 환자의 백혈구가 암세포를 죽이는 능력을 연구하려니 K562 암세포주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그 암세포주를 찾다 보니 경희대에 있었고, 미국에서 수입했다고 하더군요. 우리나라에서 만든 세포가 없기 때문이었죠.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으니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1~2년 정도 연구해 세포를 만들기 시작했고, 다른 기관에 제공하게 됐죠.”

그의 활동은 자연스럽게 암 전문가로 이어진다. 서울대 암연구소장을 맡게 된 것이다.

“서울대 암연구소장도 제가 하려고 해서 된 것이 아닙니다. 윗사람들이 48세이던 저를 서울대 암연구소장을 시켰습니다. 전임소장보다 17~18년 차이 나는 젊은 저를 소장으로 맡겨놨으니 제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겠습니까. 서울대 암연구소장은 정말 기라성 같은 권위자들이 맡았던 자리입니다. 그래서 욕을 먹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서울대 암연구소장에 있을 때 암 정복 10개년 계획을 정부에 제안하고 수립했습니다. 사실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현재 우리 국민 중 약 2500만 명 이상이 5대 암 무료검진을 받는 대상이 되는 게 그것입니다. 국립암센터도 제가 1987년 미국 국립암연구소를 다녀온 뒤에 1989년도에 정부에 제안해 시작된 것입니다. 당시 복지부 담당자가 암 대책에 대해 물어 와서 일본의 국립암센터, 미국의 국립암연구소 같은 것을 우리나라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던 것이 출발점입니다.” 이후 그는 국립암센터 초대 원장을 맡았다.

―국립암센터 원장을 맡으면서 금연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치셨습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겁니다. 서울대에 있을 때와 달리 암센터로 오게 되니까 5000만 국민들이 암으로 죽지 않게 하는 것이 제 책임이라는 생각에 시야가 넓어졌습니다. 제가 암 대책 사령관인 것이죠. 그러면 국민이 암으로 죽지 않게 해야 합니다. 언뜻 생각하면 암 치료를 잘해야겠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미 치료는 모든 병원이 사활을 걸고 합니다. 결국, 제가 할 일은 국민들이 암에 안 걸리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외국의 통계를 보면서 암에 왜 걸리는가 알아봤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해결해야 할 남아있는 원인은 담배와 감염입니다. 간암의 70%는 B형간염인데 거의 잡았고, 자궁경부암의 원인은 인유두종 바이러스인데 백신이 나와 있습니다. 감염은 선진국이 돼가면서 거의 줄었고, 이제 남은 것은 담배 하나입니다.”

그는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금연 강연을 펼쳤고, 국가를 상대로 담배사업법 위헌소송을 청구했으며, 각종 금연단체에서 흡연의 폐해를 지금도 알리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국가가 가장 큰 사기를 벌이고 있는 것이 담배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16년 동안 외쳤는데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담배가 1년에 우리 국민 6만 명을 죽이고, 매일 160명이 죽습니다. 이는 교통사고의 10배를 넘고, 6·25 전쟁 때 공식 집계된 일일 전사자만큼 매일 담배로 사망합니다. 그런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는 국가가 담배를 사업법으로 관리하는 것이 말이 안 됩니다. 지금처럼 기획재정부가 담배사업법을 통해 담배 산업을 육성하면 안 됩니다. 보건복지부에서 담배 관리법으로 바꿔서 국민들이 담배를 끊도록 관리하고 치료해줘야 합니다.”

―국립중앙의료원장도 맡으면서 생활 속 운동을 강조하기도 하셨습니다.

“국립중앙의료원장은 사실 의사 중에서 직급이 가장 높은 자리입니다. 암센터 원장 때는 국민이 암으로 죽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제 책임이었는데, 국립중앙의료원장으로서는 사람들이 질병으로 죽지 않게 하는 것이 제 역할이었습니다. 한국사람에게 많은 암, 심혈관 질환, 뇌혈관 질환, 자살, 당뇨 등 5대 질환이 있습니다. 6개월 만에 내린 결론은 운동입니다. 교과서에도 나왔지만 모든 질환을 예방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운동입니다. 그러면 운동을 어떻게 하자는 거냐. 결국은 운동화 신고 하루에 30분 이상 빨리 걷기입니다. 저는 이미 수년 전부터 지금까지 운동화를 신고 다닙니다. 지금도 담배 안 피우고, 운동화 신고 생활 속 운동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최근에는 ‘정기적인 건강 검진’도 권장하고 있습니다.”

―종교포럼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저는 교양서적을 별로 보지 못해 늘 인문학을 공부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던 2009년에 제 4년 선배인 서정돈 당시 성균관대 총장님이 유학대학원에 입학하셨습니다. 저보다 10배 이상 인문학적으로도 많이 아는 분이 공부하겠다는 것을 보고서 저도 바로 입학하게 됐습니다. 공부하다 보니 유학도 상당히 좋았습니다. 그러나 종교를 하나만 알면 모르는 것이나 같다는 말이 있죠. 제 아내는 천주교 신자이고, 어머니는 미션계학교를 나오셨으며, 아버지는 제사를 지내셨습니다. 아내 종교도, 어머니 종교도 알고 싶었고 다른 종교에도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모든 종교를 다 모아서 공부하는 모임을 만들자 했죠. 그래서 2009년 겨울 목사님, 신부님, 스님 등 170명 정도가 모여서 ‘한국종교발전포럼’을 시작했습니다. 서정돈 현재 성균관대 이사장님이 저보고 ‘박 원장 참 좋은 일 많이 했는데, 가장 좋은 일 한 게 종교 포럼 만든 거야’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사회 지도층이 편향을 갖지 않고 문화경제적으로 국제적인 균형감각을 갖자는 의미에서 ‘글로벌문화경제포럼’도 2009년에 만들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박 교수는 “나는 행복하다. 마음이 무지하게 부자다”라고 했다.

“남들은 잘 모르지만, 제가 만든 세포주은행을 통해 많은 연구소를 도와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암 정복 10개년 계획으로 인해 현재 돈 없는 사람들이 암을 일찍 발견하고 있어요. 또 병원의 개념도 치료보다는 조기검진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여한이 없습니다. 다만 금연, 운동, 검진. 이 세 가지 키워드가 우리 5000만 국민의 머릿속에 늘 있게 해주고 싶습니다. 우리 국민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은 금연, 운동, 검진 이 세 가지가 핵심입니다. 가장 쉽고도 중요한 것이지요.”

이용권 기자 freeus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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