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훈 / 경제산업부장

그 많던 돈은 모두 어디로 갔나.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었다는데, 왜 경기는 살아나지 않나.

일본과 유럽 중앙은행들이 극약 처방으로 도입한 마이너스 금리 정책이 애초 의도했던 경기부양 효과보다 시장 불안을 초래하면서 일어나는 의문이다. 혹자가 꼬집은 대로, ‘이제는 헬리콥터로 돈을 뿌려도 줍지 않는다. 그게 빚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라는 게 맞는 걸까.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의도는 시중은행더러 중앙은행에 돈을 맡겨두지 말고 돈을 풀라는 것이다. 소비하거나 투자하라는 거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들이 펼쳐온 양적 완화 쇼의 ‘끝판왕’이다. 하지만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에 걸렸다. 시장에 현금이 많은데도, 기업의 생산·투자는 물론, 가계 소비가 늘지 않아 좀처럼 경기가 개선되지 않는다. 1930년대 미국 대공황을 분석한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붙인 이름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중앙은행이 제로(0)를 지나 마이너스까지 금리를 계속 떨어뜨리는데도 가계나 기업은 현금을 금고에 쌓아두고 있다. 미래의 경제 상황에 비관적이기 때문이다. 안전자산으로 치는 장기국채나 금값이 치솟는 이유다.

유동성의 함정보다 더 무서운 건 통화정책 당국인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것이다. 일본과 유럽 중앙은행들이 구사할 수 있는 정책 수단들은 모두 나왔다. 더 이상 경기부양의 카드가 없다는 뜻도 된다. 중국 런민(人民)은행은 경기부양과 부채 사이에서 외줄 타기를 하듯이 연일 좌충우돌의 정책 수단을 내놓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기준금리 추가 인상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이런 중앙은행들이 시장에 보낸 시그널은 ‘앞으로 경기가 더 나빠진다’는 것뿐이다.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는 16일부터 시행된 마이너스 금리 정책의 효과에 대해 “향후 실물경제나 물가 면에서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마이너스 금리정책 발표 이후 부작용이 속출했는데도, 아직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국은행은 같은 날 기준금리를 연 1.5%로 8개월째 동결했다. 기축통화국인 미국, 유럽, 일본의 상황을 지켜보겠단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이 비통상적인 정책을 시행한 지 7∼8년이 됐다. 통화정책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고 했다. ‘정상’(통상)의 정책을 고수하겠다는 의미심장한 말이다.

극약 처방의 효과를 자신하는 일본은행의 호언이 현실화할지, 정상을 고집하는 한은의 판단이 옳은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위기가 닥쳐와도 위기가 아니라거나, 실패한 정책 수단을 놓고도 실패가 아니라고 한 것이 맞는지 따져보는 것은 늘 늦다. 위기가 현실이 된 다음이다. 그러니 ‘중앙은행들의 오만’에 대한 비판을 흘려듣지 말아야 한다.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더 이상의 통화정책 효과는 기대하기 힘들고, 그때는 정말 파국이다. 시중에는 2008년 금융위기, 2010년 유럽 재정위기에 이은 ‘3차 금융위기’론이 돌고 있다. ‘유럽금융위기 2.0’이라는 주장도 나오는 시점이다. 정책 당국은 위기 앞에서 ‘짖지 않는 개’가 돼선 안 된다.

oshun@munhwa.com
오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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