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학용 / 논설위원

죄악세(sin tax)는 늘 논쟁 덩어리다. 명칭부터 그렇다. 술·담배·도박 등 반사회적 세목인지라 ‘살벌한’ 이름이 붙었을 게다. 그런 행위를 죄악시하는 건 심하다는 항변이 따른다. 과세 명분을 놓고도 마찬가지다. 조세 당국 논리의 핵심은 경제 용어로 ‘외부불경제’다. 개인의 행동이 외부에 악영향을 끼쳤으니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주장이다. 음주·흡연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이와 무관한 사람도 떠안는 만큼 이들 소비를 강제로라도 줄이기 위해 과세해야 한다는 얘기다. 반론도 있다. 부자나 대기업 세금은 깎아주면서 서민 애용품에 무거운 세금을 매기는 건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의 죄악세 강화는 세계적 추세다. 직접세보다 조세저항이 덜한 데다 국민 건강이라는 명분도 제법 탄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국이 틈만 나면 이 카드를 만지작댄다. 대부분 ‘불황 상품’이라 불경기일수록 그 유혹도 커진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재정난에 허덕였던 일부 유럽국이 담배·술 소비세를 올린 게 그런 경우다. 종류도 다양해졌다.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가축에 부과하는 뉴질랜드의 ‘트림세’(burp tax)가 대표적인 예다.

정부가 지난해 국세 수입이 예상보다 2조2000억 원 더 걷힌 217조9000억 원을 기록해 4년 만에 ‘세수 펑크’를 면했다고 발표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도 스스로 대견해 하는 눈치다. 그러나 그 내역을 들여다보면 담배 세수 덕이 크다. 지난해 담배 세수는 10조5340억 원으로, 전년보다 3조5608억 원이 늘었다. 담뱃값을 평균 2500원에서 4500원으로 인상한 효과다.

복권 판매액도 지난해 3조5551억 원으로 12년 만에 최대다. 미국 사회학자 데이비드 니버트 박사는 복권을 ‘고통 없는 세금(painless tax)’이라고 했다. 주류 업계들도 최근 소주 가격을 일제히 평균 5% 이상 올렸다. 소주 값이 인상되면 출고가에 붙는 주세와 교육세 등도 덩달아 오른다. 어렵사리 죄악세 하나를 손에 쥔 정부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또 다른 죄악세까지 덤으로 거머쥔 셈이다. ‘죄악세의 달인’ 이다. 하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다. 수년간의 경기 침체가 대외적 요인에도 있지만 정부의 실정 탓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불황 속 서민들이 그나마 위안 삼는 상품에서도 실속을 챙기는 정부에 죄악세를 물릴 방도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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