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시대의 긴급조치 발령 행위가 그 자체로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하는지, 즉 국가에 직접적인 배상 책임이 있는지 여부를 둘러싸고 대법원 판례에 어긋나는 하급심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광주지법 민사13부는 당시 대학생으로 긴급조치 비방 유인물을 제작·배포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피해자 3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배상 사건에서 “긴급조치 내용이 위헌임에도 발령한 행위는 국가배상법의 위법 행위”라며 2700여만~1억여 원을 배상하라고 지난 4일 판결했다. 앞서 광주지법 목포지원 민사1부와 서울중앙지법 민사11부도 각각 지난해 2월 및 9월 같은 유형의 사건에서 국가의 직접적인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이런 판결들은 대법원 2·3부가 각각 “복역 자체가 국가의 불법 행위는 아니다”(2014.10.27),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행위”(2015.3.26)라며 국민 개인에 대한 국가 차원의 배상 책임을 부인해온 판례에 배치된다. 그럼에도 하급심에서 상이한 판단이 속출한다면 그 이유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근원적으로 법치주의 가치관 차이에서 비롯되고 있어 더욱 그렇다. 대법원은 고문 등 수사기관의 위법행위가 있어야만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하지만, 이들 하급심은 위헌 조치가 발령·집행됐으면 개별 공무원의 고의·과실이 없어도 이미 국가의 불법으로 봐온 것이다.

긴급조치 발령을 ‘통치행위’ 범주로 이해하는 대법원 소부의 입장은 긴급조치 자체에 대한 전원합의체의 2010년 12월 위헌 판결, 헌법재판소의 2013년 3월 위헌 결정과 맞지 않다. 나아가 2000년 1월 민주화보상법을 제정해 권위주의적 통치에 맞선 민주화운동 관련자의 명예를 회복하고 보상해온 ‘과거사 청산’ 맥락과도 동떨어진다.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단을 통해 편차를 새롭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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