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7일 제9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규제를 모두 물에 빠뜨려놓고 꼭 살려내야 할 규제만 살릴 것”이라며 명쾌하게 방향을 제시했다. 없애고 또 없애도 끈질기게 살아남는 규제를 끊으려면 이런 네거티브 방식의 접근이 긴요하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2013년 7월 제2차 회의에서도 “모든 규제를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 바 있다. ‘규제는 암덩어리’ ‘한꺼번에 단두대에 올릴 것’이라는 강도 높은 수사(修辭)도 귀에 생생하다. 주력 업종 퇴조, 신성장동력 부재의 이중고를 겪는 한국경제 회복을 위해 규제 개혁은 필수다. 그러나 근 3년에 걸쳐 9차례 회의에서 숱한 규제 완화 보따리를 풀었지만, 수출은 뒷걸음질이고 투자 또한 살아나지 않고 있다.

연초 다보스포럼은 인공지능, 로봇 등 기술융합이 가져올 제4차 산업혁명을 주창했다. 이런 신(新)산업에선 속도가 승부를 가른다. 드론만 해도 중국 업체가 재빨리 세계시장을 장악했고, 미국·일본 등이 서둘러 상업용 운행 장벽을 치우고 있다. 그런데 국내에선 신산업에 도전하려 해도 관련 규정이 없다고 퇴짜 맞기 일쑤다. 그러니 우선 규제라도 만들어달라고 호소하는 진풍경도 벌어진다. 사후 규제로 이미 시작한 사업을 망치는 경우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날 ‘공유경제’로 대표되는 서비스 부문 신산업 육성 방안을 제시했다. 우버의 등장으로 택시산업이 흔들린 것처럼 혁신 기술·기법이 도입되면 기존 산업체계는 송두리째 재편될 수밖에 없다. 이른바 ‘우버 모멘트’다. 정부도 뒤늦게 공유경제의 잠재력을 깨닫고 숙박·차량 공유사업을 키우기로 했다. 그러나 새로 도입할 ‘공유 민박업’은 연 120일 한도에 부산·강원·제주로 제한했고, 법 제정을 거쳐야 한다.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언제 하겠다는 건지 종잡을 수 없다. 우버식 승차공유나 ‘콜버스’는 기존 업계 눈치를 보느라 말도 못 꺼내고 있다. ‘우버’도 못하면서 그럴듯한 아이디어만 내고 있다. 몇 달에 한 번씩 현란한 수사로 생색내기보다 한가지라도 획기적 실행(實行) 사례를 내놓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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