⑦ 흔들리는 산별노조근로자간 격차 해소 기능 상실
기득권 노조가 노동약자 ‘외면’

대법, 산별노조 탈퇴기준 제시
발레오전장 소송 원심 파기도
상신브레이크 등도 대법 계류


선진국에서 근로자 간 격차를 해소하는 역할을 해 온 산별노조가 우리나라에서는 대기업-정규직-유(有)노조 사업장 근로자의 ‘강성·정치 투쟁’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양대 노총이 중소기업·비정규직 근로자 등 약자 보호에 나서야만 산별노조를 중심으로 한 노동운동이 우리 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지난 19일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산별노조 파괴 행위”라고 규정하며, 22일 제4차 민중총궐기 참여호소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등 기득권 근로자 중심의 노동운동 기조에 변화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발레오전장시스템코리아 노조가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 산하 지회에서 자체 기업노조로 전환하기로 한 총회 결의안 무효 소송에 대해 기업노조 전환을 불허한 원심을 깨고,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이는 산별노조에서 기업별노조로 전환하는 길을 터준 것으로, 1997년 노조관계법 제정 이후 산별노조 조직률을 높여 온 양대 노총의 조직력이 약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2006년 54.8%였던 민주노총의 산별노조 조합원 비율은 2014년 81.0%까지 올라갔다. 한국노총 역시 2006년 31.7%에서 2014년 46.7%로 산별노조 조합원 비율이 크게 늘었다.

전문가들은 우리 나라의 산별노조가 도입 20년 만에 한계를 드러낸 원인으로, ‘근로자 간 사회적 연대’라는 산별노조 본연의 기능에 실패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산별노조는 산업별 공동교섭을 통해 동일임금, 동일노동을 확립해 산업별 근로자 간 격차를 줄이는 역할을 한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산별노조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중소기업·비정규직 근로자 등 노동 약자까지 조직을 확대해 이들의 근로 개선을 이뤄내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선 대기업-유노조-정규직 사업장의 양보와 격차 해소 노력이 필요한데, 우리나라에서는 애초에 기득권 노조가 투쟁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산별노조를 조직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민주노총은 산별노조를 통해 조합원의 이익을 대변하기보다, 정치투쟁의 도구로 이용한 측면이 컸다 . 이에 따라 노동조합 조직률 자체가 낮아졌고 산별노조를 이탈해 개별 기업노조를 설립하려는 움직임이 싹텄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다른 선진공업국에서 산별노조는 노조의 표준 모델이고,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위해선 기업별 노조보다는 산별노조로 가는 게 맞다”고 말했다.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기업노조의 산별노조 탈퇴 기준을 제시하면서 하급심을 포함해 수십 건으로 추정되는 유사 쟁점 사건에 대한 판결도 곧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에는 유사 쟁점 사건이 2건 계류돼 있다. 금속노조 산하 상신브레이크지회가 기업별 단위노조인 상신브레이크 노동조합으로 조직형태를 변경한 사건과 한국양계농협노동조합이 산별노조인 전국축산업협동조합노조를 탈퇴한 사건 등이다.

대법원은 발레오전장시스템코리아 노조 판결을 통해 “독자적인 규약·집행기관을 가지고 독립한 단체로 활동하여 법인 아닌 사단이 근로자단체에 준하는 지위를 가진 경우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전까지는 독자적인 단체교섭·단체협약체결 능력이 있어야 산별노조 하부조직을 독립된 노동조합으로 볼 수 있었던 것에서 그 범위를 넓힌 것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판결 취지대로라면 산별노조에서 탈퇴하려는 기업노조의 손을 들어주는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영주·정철순 기자 everywher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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