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인 24일 민주사회장으로
4·19혁명의 주역이자 7선 의원을 지낸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가 20일 별세했다. 이 전 총재는 숨을 거두기 전까지 6년간 준비해온 자신의 자서전 ‘우행(牛行)’ 원고를 탈고할 만큼 건강했던 것으로 알려져 주변의 안타까움이 더했다. 79세.
빈소가 마련된 서울성모병원에는 정의화 국회의장,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 등 여야 인사들이 대거 조문했다. 김 대표는 “7선 의원을 지내시면서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초지일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해서 헌신하신 존경스러운 분”이라고 고인을 추모했다. 안 대표는 “정치의 고비 고비마다 원칙, 소신을 가지고 열심히 사신 분”이라고 말했다.
경북 포항 출신인 이 전 총재는 1960년 고려대 상과대학 학생위원장 시절 이승만정권의 자유당 3·15 부정선거에 항의해 ‘4·18 고대 의거’를 주도하며 4·19혁명에 불을 붙였다. 이 전 총재는 1967년 7대 총선에서 31세의 나이로 신민당 소속으로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됐으며, 이후 11대를 제외하고 14대까지 7선 의원을 지냈다.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에 헌신했던 이 전 총재는 1979년 신민당 총재 경선에 참여했지만 1차 선거에서 고배를 마신 뒤 결선에서 YS를 지지, 그의 당선에 기여하며 YS와 정치적 행보를 함께한다. 하지만 1990년 YS가 전격적으로 노태우 대통령의 민주정의당, 김종필 총재의 신민주공화당과의 ‘3당 합당’에 합의하자 이에 반발, YS와 결별을 선택하는 등 굴곡을 겪었다.
이후 이 전 총재는 당시 노무현·홍사덕·이철 의원 등과 민주당(일명 꼬마민주당)을 창당해 총재로 선출됐고, 이듬해 DJ의 신민주연합당과 합당해 공동대표에 오른다. DJ의 정계 은퇴 선언 이후에는 단독 총재로 대권의 꿈을 키웠지만 DJ의 은퇴 선언 번복으로 대권의 꿈이 무산되기도 했다. 2002년 대선에서는 노무현 당시 새천년민주당 후보를 지원하며 정권 재창출에 공신이 됐다. 하지만 2007년 대선에서는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를 도우며 이명박정부에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을 지냈다. 장례는 24일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지며 장지는 국립 4·19민주묘지.
손우성 기자 applepi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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