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진수 / 논설위원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의 서울은 젊음이 약동하던 도시였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보면 변두리 쌍문동에서조차 청년들이 고무공처럼 각 분야로 튀어 나가는 활력을 보여준다. 그 해 서울 인구는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세계 어느 도시 못지않은 모범적인 도시화 모델을 보여줬다. 수도답게 젊은 심장이 뛰던 서울이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 서울은 2019년이면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14.3%로 증가한다. 이미 서울 택시기사는 4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이다. 고령화는 서울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대한민국 수도로서 서울의 고령화가 갖는 상징성은 크다. 서울이 활력을 잃으면 전국이 생명력을 잃는다는 점에서 결코 방치할 일이 아니다. 정보와 인구가 집약된 서울은 대한민국의 축소판이다. 문화·정보 산업이 부흥했지만, ‘욕망의 용광로’이자 모든 사회 문제의 응집체이기도 했다. 서울의 해법을 잣대로 다른 지역의 범죄, 교통난 등 각종 문제도 풀어나갔다.

젊은 도시로 여겨졌던 서울이 3년 뒤 고령사회가 된다는 것은 충격적인 속도다. 가장 먼저 우려되는 점은 생산력 저하-복지 비용 증가의 불균형이다. 지난해 서울 지하철 5∼8호선의 65세 이상 노인(77.7%) 등 무임 운송인원이 1억 명을 돌파했다. 노인들은 청년들과 달리 주거 이동성이 떨어진다. 직장에서 밀려난 50대 중반 이후 베이비부머들은 형편이 어려워져도 좀처럼 경기·충청권 등으로 이사하지 않는다. 최근 전셋값 등 주택난과 조기 은퇴, 일자리 감소, 자영업자 몰락 등이 노인 빈곤율을 더욱 높이는 구조다. 갈수록 독거노인 고독사와 가족 동반 자살 등의 문제가 곪아 터질 수밖에 없다.

서울시는 이제 세계보건기구까지 인정하는 ‘고령 친화도시’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미국 보스턴시의 비컨힐 마을에서는 50세 이상에게 웰빙 운동 서비스와 함께 재가(在家) 보건, 아트쇼와 박물관 연계 여가 프로그램, 명사와의 만남 등 원스톱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서울만의 고령 친화 모델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서울의 사람뿐 아니라 시설물도 함께 늙고 있다. 서울 노후 하수관로에 의한 도로 함몰과 지하철 노후화에 따른 잦은 고장은 양대(兩大) 경보음이다.

슬럼화되는 도심의 재생도 ‘서울 활력 되찾기’의 관건이다. 지하도로를 뚫고 그 위에 높이 247m의 초고층 복합 빌딩인 ‘도라노몬힐스’를 세워 도심 재생과 교통문제 해결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도쿄(東京)의 유연한 개발방식을 서울도 적극 참고할 필요가 있다. 낡고 좁은 중소빌딩이 밀집했던 도라노몬 지역은 최근 영어로 진료하는 국제병원 건립이 착수되는 등 활력 있는 ‘업무중심지구’로 바뀌고 있다.

10년 넘도록 방치된 세운상가가 2월부터 단계적인 도시 재생 사업에 들어갔다. 늙어가는 서울 도심을 바꾸는 데도 컨벤션 시설·미술관과 콘서트홀·공중 가로로 연결되는 쇼핑 공간·친환경 산책로 등을 동시에 조성하는 입체·복합 도심 개발 방식을 과감하게 시도해야 한다. 우선 서울의 한두 개 핵심 지역에서라도 도심 재생 성공의 불을 지펴야 서울 고령화의 돌파구를 찾아낼 수 있다. 서울의 경쟁력이 곧 나라의 파워임을 명심해야 한다.

jiny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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