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동 / 문학평론가, 서강대 명예교수

우리는 그동안 대한민국이 선진국 문턱에 들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정치적 슬로건으로 표시한 깃발을 심심찮게 봐왔다. 그런데 ‘선진국 문턱’이라는 말이 국민 입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이는 국가의 모든 활동을 통제하고 조정할 정치가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다른 분야에 비해 너무 뒤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제19대 국회가 ‘역대 최악’이라는 말로도 증명된다. 당사자들은 나름의 주장과 변명이 있겠지만, 국민의 눈에는 지난 4년 내내 민주주의 다수결 원칙에 위배되는 국회선진화법을 빙자로 미래 권력 쟁취를 위한 정쟁만 하는 것으로 비쳤다. 행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게 국회의 의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국민과 국가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국민에게 피로감을 줄 정도로 정부의 ‘발목을 잡는’ 이기적이고 당파적인 행위는 안 된다. 윈스턴 처칠은 “하원의 의무는 정부를 지지하거나 교체시키는 것이다. 교체시킬 수 없다면 지지해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제19대 국회가 사상 ‘최악’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 것은 선진화법이라는 제도상의 문제도 있겠지만, 함량 미달 국회의원들의 자질과 사명감 및 도덕성 문제 때문이란 점도 국민은 지적한다. 일부 의원들의 ‘갑질’과 특혜는 물론 막말, 그리고 “정치란 공적인 기회에 윤리적 이성을 적용하는 것”이라는 로베르트 W 분젠의 말과는 달리 개인적 욕망을 위해 자기가 속한 조직의 정책과 특질(에토스)을 버리는 정치인으로서의 품격을 상실하는 모습을 거침없이 보였다. 또 국민의 세금만 축내며 뒷짐 지고 앉아 있는 ‘월급쟁이’ 의원들도 다수의 지적 대상이다.

그래서 대다수 국민은, 19대 국회에서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으로 부적격하다고 평가받은 사람들은 제20대 국회에 진출하는 것을 자제토록 하는 단호한 행정적 조치를 마련하는 게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탈피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여야 모두 당사자에게 결격사유가 있다면, 단수 후보라도 공천하지 않는 게 옳다. 일각에서는 19대 총선에서 많은 의원을 물갈이했지만, 19대 의원들의 자질과 활동이 나아지지 않았다고 항변하지만, 물은 흘러야만 맑아지는 것처럼 ‘물갈이’는 인간의 본성이 지니고 있는 침전물 때문에 한 번으로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4·13 총선을 앞두고 경선 후보자 심사 관계자들은 후진적인 한국 정치를 바로잡을 수 있는 엄중한 시점임을 깊이 인식하고 공정한 기준을 마련해 사심 없이 투명하게 일을 매듭 지을 수 있기를 국민은 기대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경우 상향식 공천을 주장하는 김무성 대표의 주장이 겉보기엔 설득력 있게 들리지만, 현실적으로 현역 의원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해 정치 신인들에게 불리하게 될 수 있다는 지적이 국민을 실망시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우도 ‘현역 20% 컷오프’를 주장하지만, 그것이 국민의당과 분당되기 전, 지난해 11월 18일 의원 127명을 기준으로 확정된 방침이기 때문에 ‘물갈이’ 작업에 대한 국민의 의구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만일 4·13 총선 후보자를 인물과 능력 중심으로 뽑지 않고 특정 계파의 이익을 위해 뽑는다면, 그들이 의회에 진출해 지금처럼 지리멸렬한 정파 싸움의 모습을 보이게 될 것이며, 이는 국가 발전은 물론 한국 정치의 퇴행을 초래해 또다시 국민이 정치를 경멸하는 불행한 상태가 야기될 것이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선거를 공명하게 치를 수 있는 사람들은 반란도 진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