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산악계에서 홍성택(50) 원정대장은 ‘숨은 실력파’로 통한다. 산악인 중 널리 이름이 알려진 허영호(62), 엄홍길(56), 박영석(2011년 사망)에 비해 화려하지는 않지만 ‘내실’ 있다. 에베레스트(8848m), 안나푸르나(8091m) 등 고산은 물론 남극, 북극 등 극지까지 정복한 등반가이자 탐험가이기 때문이다.
홍 대장은 지난해 말 세계적인 등반가들도 고개를 절레절레하는 로체 남벽(8516m)에 네 번째로 도전했다. 비록 또다시 실패로 끝났으나 도무지 물러설 기미가 없다. 오는 봄 ‘4전 5기’에 나서는 홍 대장을 지난 22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한국대학산악연맹 클라이밍 훈련장에서 만났다.
홍 대장은 허영호, 엄홍길 대장이 현역에서 은퇴하고 박영석 대장이 2011년 안나푸르나에서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이후 사실상 한국 산악계를 이끌어온 주역이다. 미련하리만큼 자신의 길만 묵묵히 걸어왔다.
북극과 베링해협은 홍 대장이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곳이다. 두 곳 모두 끈질긴 도전 끝에 도보로 횡단에 성공했다. 고산 등반은 기후 변화 등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철수해 다음 기회를 노리면 되지만 북극은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중도에 멈추는 게 불가능하다. 바다 위로 꽁꽁 언 빙하를 헤쳐나가는 것이어서 위험하기 짝이 없다. 특히 빙하가 계속 움직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부상을 당하거나 길을 잃을지 모른다. 북극의 축소판으로 불리는 베링해협 역시 빙하가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위험천만한 곳이다. 홍 대장은 차디찬 빙하 밑으로, 바다에 여러 차례 빠지며 죽을 고비를 넘긴 후에야 비로소 극지를 정복했다.
홍 대장의 탐험 여정은 1993년 에베레스트 등정부터 시작됐다. 이후 남극점(1994년)과 북극점(2005년)을 다녀왔고 그린란드(2011년), 베링해협(2012년)을 건넜다.
그러나 로체 남벽은 홍 대장을 외면했다. 로체 남벽은 에베레스트, 안나푸르나와 함께 히말라야 3대 ‘난벽’으로 꼽힌다. 거의 수직의 빙벽으로 이뤄진 코스여서 아직 등반에 성공한 사람이 없다. 1990년 러시아가 국가대표급의 원정대를 파견해 도전에 성공했다고 주장했지만 세계적으로 공인받지 못했다. 정상 정복을 입증할 만한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2006년 일본 원정대가 해발 8475m까지 올랐다가 철수한 게 지금까지 오른 최고 높이다. 일본도 끝내 정상 정복은 못했다.
홍 대장이 ‘불가능’에 도전한다. 1999년 첫 번째 시도 이후 지난해 말까지 4번 도전했다 실패했지만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1999년 8월 첫 원정에선 7000m밖에 올라가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했다. 5200m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5900m에 ‘캠프1’을 설치했다. 캠프1 이후부터는 거의 경사도가 80도가 넘는 직벽이 정상까지 계속된다. 홍 대장은 “두 발을 한꺼번에 붙일 곳조차 없다. 식사는 물론 대소변도 로프에 매달린 채 처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당시 1억5000만 원의 원정 비용 중 모자랐던 3분의 1을 대원들이 각자 부담해 떠났다. 실패 후 3000만 원의 빚이 고스란히 남았다. 생계유지를 위해 등산과는 무관한 외국어학원에서 근무하면서 받은 월급을 아내 몰래 빼돌려 빚을 갚았다.
두 번째 도전은 그로부터 8년이 걸렸다. 2007년 2월 엄홍길 대장과 함께 10여 명의 원정대를 구성해 8000m까지 접근했다. 이곳에서 엄 대장은 로체샤르(8400m)로 진행해 ‘16좌 완등’에 성공했으나 로체 남벽으로 갔던 홍 대장은 또 물러나야 했다. 2014년 9월 세 번째 도전에 나섰다. 6명의 최정예 대원으로 원정대를 꾸려 ‘캠프4’(8200m)까지 올랐다. 그러나 눈사태가 나는 등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등반 일정이 지연되면서 네팔 정부로부터 받은 70일간의 체류 비자가 만료됐다. 잡힐 듯 잡힐 듯하던 정상이 저만치 물러섰다.
홍 대장은 2015년 9월 네 번째 도전을 떠났다. 주위에선 “할 만큼 했잖냐”며 말렸지만 홍 대장은 멈출 수 없었다. 역대 최대 규모의 원정대를 꾸렸다. 등반 가이드인 셰르파와 요리사까지 포함해 21명으로 원정대를 구성했다. 원정 비용 3억5000만 원은 김성대 전복마니 대표가 후원했다. 8200m 캠프4에서 드디어 정상 공략에 나섰다. 하지만 날씨가 급변했다. 시속 150㎞의 강풍이 길을 막았다. 셰르파가 “바라삽(대장), 문제가 생겼다. 설치해둔 텐트가 다 날아갔다”며 고개를 저었다. 홍 대장은 산봉우리를 코앞에 두고 다시 하산했다. 홍 대장은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정상 정복보다는 대원들의 안전이 먼저였다”고 말했다.
홍 대장이 로체 남벽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산악인으로서 자존심을 지키고, 자신과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서다. 홍 대장은 “주위에선 미련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오를 수 있는 산만 가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위험해도 로체 남벽은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산”이라며 “처음 산에 입문하게 된 초심을 잊지 않고 또 한국 산악인으로서의 근성을 보여주기 위해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홍 대장은 지난 원정 때 초등학교 5학년이던 막내딸이 “아빠가 보통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며 울먹일 때 가슴이 찢어졌단다. 홍 대장은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이번 도전이 마지막이 돼야 한다”며 “이제 정상까지 300여m 남았다. 자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원정 비용이 문제다. 네 번씩이나 실패했기에 선뜻 나서는 후원사가 없다. 홍 대장은 십시일반으로 후원금을 모으고 있다. 다큐멘터리 채널인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일부 후원과 촬영을 검토 중이다. 해외에선 그의 원정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엄홍길 대장이 합류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홍 대장은 “아내에게 한 번 더 도전해보고 싶다고 했더니 그러라며 용기를 줬다”며 “가족들에겐, 설령 내가 원정에서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절대 슬퍼하지 말라고 늘 말한다”고 덧붙였다.
용인대 유도학과 출신인 홍 대장은 1986 아시안게임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연습 경기 도중 사고로 친구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냈다. 큰 충격을 입은 홍 대장은 유도를 그만뒀다. 그리고 마음의 안식을 찾은 곳이 산.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길을 우직하게 가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로체 남벽에 자신의 운명을 걸었다.
인터뷰 = 김인구 차장 (체육부) clar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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