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립중앙박물관에 흥미로운 유물이 전시됐습니다. 바로 숟가락. 올해 고려실이 개편되면서 오랫동안 수장고에 갇혔던 숟가락들이 대거 ‘무대’에 올라온 겁니다. 숟가락은 너무 ‘일상적’이어서 그런지, 그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구색을 맞추기 위해 2∼3점 놓여 있는 게 다였지요. 이번엔 한꺼번에 수십 점이 ‘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나전 경함과 고려 불화, 청자 사이에서도 그 존재가 뚜렷합니다. ‘수저 계급론’이 사회 현상이 된 상황에서 숟가락이 수장고 밖을 나온 게 우연처럼 보이진 않습니다. 관람객의 관심사를 반영한 전시 기법이고, 연구가 필요한 유물에 학계의 주목을 끌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저 계급론에는 금·은·동·흙이 있습니다만, 고려 시대 숟가락은 대부분 청동입니다. 일명 ‘청동 수저’. 술자루(손잡이)가 현대의 것보다 길고, 아치형으로 구부러진 게 많습니다. 술잎(입을 대는 부분)도 꽤 큽니다. 술총(끝부분)은 두 갈래로 갈라지는 연미형(제비 꼬리 형태)이 대표적. 그런데 저걸로 어떻게 밥을 먹었을까, 의례용은 아닐까. 전시를 기획한 서윤희 학예사는 “술잎의 왼쪽 부분이 닳아 있는 경우가 많다”며 “실제로 밥을 먹는 데 사용했다는 게 정설이다”고 했습니다.

‘한국 고대 숟가락 연구’(경인문화사)에 따르면 청동 수저는 무령왕릉 등 삼국 시대 일부 고분에서 발견되다가, 고려 시대에 와선 일반 무덤에서도 나오고, 조선 시대엔 아주 일반적으로 사용됩니다. 정의도 한국문물연구원 원장은 “삼국 시대까진 일부 계층을 제외하고 도구 없이 밥을 먹었다”며 “12세기에 숟가락 사용이 자리를 잡았다”고 말했습니다. 정 원장은 “고려가 원나라의 지배를 받으며 육류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식탁에 국이 빠지지 않게 된 점도 숟가락 사용을 촉진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금·은수저는 조선 시대에도 왕실에서나 사용했다”고 덧붙였습니다.

고려 시대엔 숟가락이 무덤의 주요 부장품이었습니다. 한국인은 밥을 먹는 처음부터 끝까지 숟가락을 사용하는 유일한 민족이기도 한데요. 중국에선 탕을 먹을 때만 잠시 쓰고, 일본에선 그마저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어쩌다 우린 숟가락을 ‘놓지’ 못하고, 무덤까지 들고 가게 됐을까요. 정 원장은 “숟가락이 출토된 고려·조선 시대 유적이 많은데도 이에 대한 상세한 검토가 이뤄진 보고서는 손에 꼽을 지경”이라며 안타까워했습니다.

1000년 전 청동 수저를 사용했던 옛사람들이 수저 계급론을 들으면 아마 “숟가락은 밥 먹는 데나 쓰는 거다”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수장고의 숟가락들이 관람객과 만나는 모습을 보며 의미를 찾아봅니다. 한국의 수저 문화 연구를 활성화시켜주기를.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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