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정기 / 논설위원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정치.’

4·13 총선까지 D-49, 각 정당의 공천 후보 걸러내기 내지 솎아내기가 시작되면서 필자는 ‘화장실 비유’를 자주 떠올린다. 공당 대표의 공언이라서만은 아니다.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는 지난달 12일 국회 정론관에서 후보를 공천하는 각 정당의 자격 요건을 새로이 다듬자고 제안하면서 “정당정치는 책임정치”라고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스스로도 같잖은 상투어라 싶었던지 일생의 음색, 일상의 음질로 바꿨다 - “공천할 때는 언제고 문제가 생기면 나 몰라라 하는 정치,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정치를 바꿔야 한다.”

심 대표의 ‘공천 무한책임제’ 제안은 겉포장으론 거창하다. 그러나 그 내용물은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의 비유만큼 쉽다. 간단하다. 정당의 공천을 받아 당선된 국회의원이 부정선거나 부정부패 등으로 의원직을 박탈당해 재·보궐선거를 실시해야 할 경우 해당 정당의 후속 후보 공천 포기는 물론, 그 정당에 대한 문책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재·보선 비용의 50%를 국고보조금에서 삭감하자는 요지다.

백번, 천번 옳(은 주장이)다. 심 대표가 “정당의 책임은 총선 후보를 공천하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당선된 후보의 잘못에 대해 연대책임, 무한책임을 지는 데 있다”고 한 말도 어디 흠잡을 데 있으랴. 문제는 공직선거법과 정치자금법을 그렇게 바로잡자는 주장에 흔쾌히 박수 칠 수준의 정치, 정치인이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국회가 지난해 7월 24일 개정 선거법안을 의결해 종전 연 2회의 재·보선을 연 1회로 줄이기 전에도 재·보선 원인제공 정당의 책임에 생각이 못 미쳤던 것 아니었다. 못 미친 것은 의원들의 질이고 수준이다.

정당 국고보조도 그렇다. 지난 한 해만 394억4000여만 원, 정치자금법에 국고보조 조항을 삽입한 1980년 12월 이래 35년에 걸쳐 누계 1조2000억 원 이상 흘러나온 ‘황금 연못’이다. 그 황금 연못을 채워온 국민의 혈세를 조금은, 아주 조금은 단념하자고 한다면 그게 곧 염치일 것이다. 그러나 심 대표가 지난해 3월 15일 “의원정수를 360명으로 늘리자”고 할 때 반색하던 그 장면과는 딴판이다, 태무심하다.

공천책임제가 정의당과 어느 정당과의 공동 공약으로 엮이길 기대한다면 과욕일까 허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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