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먼저 갈게.”

강정만이 일어섰을 때는 10시 반이다. 이미 위스키를 반 병쯤 마신 강정만이 붉어진 얼굴로 둘을 번갈아 보았다.

“다 큰 성인 둘한테 내가 어쩌고저쩌고할 수는 없고.”

서동수와 하선옥은 시선만 주었고 강정만이 정색하고 떠벌렸다.

“여기서 날 따라 일어난다든가 또는 말린다든가 할 만큼 둘의 비위가 약한 것도 아닌 것 같으니까 마음놓고 가겠다.”

“빨리 가.”

소파에 등을 붙인 서동수가 정색하고 말했을 때 하선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안녕히 가세요.”

하선옥이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자 강정만이 숨을 들이켜면서 몸을 돌렸다. 강정만이 응접실을 나갔을 때 하선옥이 자리에 앉더니 술병을 들었다.

“여자 많으시잖아요?”

서동수의 잔에 술을 따르면서 하선옥이 차분한 표정으로 물었다.

“새 여자를 즐기신다고 SNS에서 떠들더군요. 잡식성이라고.”

“맞는 말인데.”

술잔을 든 서동수가 지그시 하선옥을 보았다.

“하선옥 씨한테 먼저 물어볼 것이 있었어요. 대답을 들읍시다.”

“말씀하세요.”

하선옥이 한쪽 다리를 꼬아 얹었다. 미끈한 허벅지까지 드러났고 발가락이 가지런하게 눈앞에 펼쳐졌다. 살구색 스타킹 안에 든 발이 그물에 잡힌 산 고기 같다. 서동수가 한 모금의 술을 삼켰다.

“한국인의 품성을 말해 봐요.”

“네?”

예상 밖의 질문이었던지 하선옥의 얼굴에서 곧 웃음기가 지워졌다. 서동수가 다시 물었다.

“하선옥 씨가 본 한국인의 품성을 듣고 싶은데, 여론조사나 홍보 관련 일을 하면서 느꼈을 것 아닙니까?”

“…….”

“솔직한 생각을 들읍시다.”

그때 술잔을 내려놓은 하선옥의 얼굴에 다시 웃음기가 떠올랐다. 그러나 눈꼬리가 솟은 눈동자가 반짝인다.

“한국의 정치 수준이 낮다고 밤낮으로 비판하는 언론, 시민들을 보았어요.”

서동수는 시선만 주었고 하선옥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시민 수준이 정치 수준과 같으니까 그렇게 된 것이죠. 그런 정치인들을 뽑은 시민이니까요.”

숨을 들이켠 서동수가 술잔을 쥐었을 때 하선옥의 열띤 목소리가 이어졌다.

“시민 수준에 맞춰야 합니다. 언론 대응도, 처신도 맞춰야 돼요. 괜히 잘난 척할 필요가 없다고요.”

한입에 술을 삼킨 서동수가 지그시 하선옥을 보았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럼 내가 할 일은?”

“장관께 남은 카드는 하나뿐이죠.”

어깨를 들었다가 내린 하선옥이 상기된 얼굴로 서동수를 보았다.

“정직한 사람, 정직한 지도자, 가장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일이죠.”

서동수가 머리를 끄덕였다.

“내 홍보 업무를 맡아줘요.”

“물론 비공식으로 맡아야겠죠?”

“당분간은.”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것이 낫겠어요.”

“맡기겠습니다.”

그러자 심호흡을 한 하선옥이 응접실을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

“저, 채홍사가 가셨으니까 일어서도 괜찮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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