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시간 맞추기 힘들고
관계맺음에 지칠 때 많아
눈치안보고 여유 즐기고파”
소외 아닌 ‘자유로움’ 선택
극장·음식점 싱글석 확대
컬러링북·나노블록 조립 …
‘혼자놀기’ 아이템도 급증
“버섯 샤부샤부 1인분 주세요.”
지난 6일 오후 2시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 ‘1인 샤부샤부 식당’. 김윤희(여·26) 씨는 넥타이를 맨 30대 남성부터 편안한 옷차림의 40대 여성까지 혼밥(혼자 밥 먹기)을 즐기는 사람들로 인해 30여 분을 기다린 끝에서야 식사할 수 있었다. 김 씨는 “일요일인데도 출근해 일을 했으니 맛있는 음식을 나에게 선물하고 싶다”며 “이제 혼밥은 이상하거나 어색하지 않다”고 말했다.
식사를 마친 김 씨는 영화관으로 이동해 보고 싶은 영화를 예매했다. 평소 한 달에 1∼2번씩 혼영(혼자 영화 보기)을 즐긴다는 그는 “영화 예매 후 상영할 때까지 시간이 남으면 근처 술집에서 혼자 맥주를 마신다”며 “해외여행도 혼자 다니고 매년 나가는 마라톤 대회도 홀로 참석한다”고 밝혔다. 김 씨는 “직장인이 된 후 새로 친구를 사귀기도 힘들고 기존에 알던 사람들과도 시간을 맞추기 어려워 자유롭게 홀로 사는 법을 터득했다”며 “딱히 다른 사람과 함께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식당에서 ‘혼자 밥 먹는 일’이 조롱의 대상이 되거나 부끄러운 행동으로 여겨지던 것은 이미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얘기다. 과거 밥을 함께 먹을 사람이 없어 식당 구석이나 편의점에서 대충 끼니를 때우던 ‘혼밥족’의 초라한 이미지는 사라지고, 이제는 심지어 ‘자발적 혼밥족’까지 등장했다. 불편한 관계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여유를 즐기고 싶은 솔로들이 증가하면서 혼밥뿐 아니라 혼술족(혼자 술 먹기)·혼곡족(혼자 노래 부르기)·혼놀족(혼자 놀기)·혼영족 등 ‘혼족’들의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다.
실제 지난해 말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15’에 따르면 2014년 한 해 동안 혼자 여가를 보냈다는 응답(15세 이상)은 2007년 44.1%에서 2014년 56.8%로 12.7%포인트 증가한 반면, 친구와 보냈다는 응답은 2007년 34.5%에서 2014년 8.3%로 26.2%포인트 감소했다.
1인 가구 숫자가 증가하는 것도 혼족 문화를 발전시키는 요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가족변화에 따른 결혼·출산행태 변화와 정책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한국의 1인 가구 수는 506만1000가구로 전체 가구 중 1인 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27.1%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66만1000가구를 기록한 1985년보다 약 6.7배가 증가한 수치다.
혼족 문화의 현상 중 단연 손꼽히는 것은 혼밥·혼술과 같은 먹거리 문화의 발전이다. 혼밥족을 위한 편의점 도시락의 반찬은 다양화·고급화되고 있고 칸막이가 설치된 1인 라면집과 고깃집도 점차 늘고 있다. 모니터로 먹고 싶은 메뉴를 고르면 식권이 발권되고 칸막이와 커튼이 쳐진 1인석에서 완벽히 혼자 라면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주로 혼자서 맛집 탐방을 한다는 직장인 강민경(여·25) 씨는 “굳이 다른 사람들과 시간 맞춰서 만나지 않아도 되고 음식에 집중할 수 있어 혼밥을 즐긴다”며 “사회 생활하면서 관계에 지칠 때가 많다 보니 다른 사람 눈치를 보지 않고 혼자 오롯이 여유 있는 시간을 갖고 싶을 때가 많다”고 말했다.
모든 메뉴를 1인분 기준으로 하거나 ‘조용히 마시다 갈 분들을 환영한다’는 문구가 걸린 혼술집들도 인기다. 가끔 서울 성동구 왕십리의 혼술집을 찾는다는 대학생 정모(27) 씨는 “취업 준비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이곳을 찾는다”며 “나 혼자 깊은 생각에 빠질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혼영·혼곡·혼놀 등 혼자서도 취미 생활을 당당히 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도 확산되고 있다.
CGV 리서치센터 조사에 따르면 전체 영화 티켓 매출 중 1인 티켓의 비율은 2011년 8.4%, 2012년 7.7%, 2013년 8.1%, 2014년 9.7%, 2015년 10.1%를 기록하는 등 점차 증가하고 있다. 메가박스는 이 같은 추세를 감안, 2013년 코엑스점에 혼족을 위한 싱글석 2개 관을 도입한 후 2014년 4개 관을 추가 도입했다.
성인 색칠공부·나노블록 조립 등 혼자 즐기는 놀이의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다. 세계 최대 인터넷 서점인 아마존의 베스트셀러 목록에는 성인용 컬러링북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고 나노블록 조립은 신종 키덜트(아이와 같은 감성을 가진 어른) 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와 관련, 김수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복잡하고 바쁜 사회에서 관계 유지를 위해 들여야 하는 심리적·경제적 비용이 크다 보니 이런 부담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며 “토크쇼나 맛집 탐방 등의 TV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것도 혼족들이 대리만족을 위해 많이 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봉석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혼자’라는 단어는 이제 외로움·고독·소외를 의미하는 단어가 아닌 자유로움과 개인을 표현하는 말”이라며 “개인의 고립보다는 자유롭고 개성 있는 현대인들을 나타낸다는 측면에서 혼족 문화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박효목·손고운 기자 soarup624@munhwa.com
주요뉴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