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지 않으셨어요?”

더글러스와 안종관이 먼저 나갔을 때 하선옥이 물었다. 오후 10시 반이 되어가고 있다. 서동수가 머리를 저었다.

“사업에서도 일방적인 호의는 없는 법인데 국가 간의 대업(大業)은 오죽하겠소?”

“동북아 대성장 루머를 중국 측이 주도해서 퍼뜨릴 것이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어요?”

하선옥이 눈을 가늘게 떴다. 열중한 표정이다.

“앞으로 어떤 모략이 더 일어날지 두렵군요.”

“미국이 내 대마도 회수 이야기까지 들었을 텐데 일본을 포기한다니 충격이군.”

“그것도 믿을 수 있겠어요?”

소주잔을 쥔 하선옥의 손가락이 갸름했다. 매니큐어도 바르지 않았는데 손톱 밑은 분홍색이다. 서동수의 시선을 받은 하선옥이 소주잔을 내려놓았다. 탁자 위에 놓인 손이 주먹으로 변했다가 곧 아래로 내려갔다.

“왜? 내 시선이 레이저 같소?”

“아닙니다.”

하선옥의 눈 주위가 금방 붉어졌다.

“하긴 선입견이란 거, 무시할 수가 없지.”

“아닙니다. 저는 장관께 선입견 없습니다.”

“난 지금 미국 이야기를 하는 거요.”

숨을 들이켠 하선옥이 시선을 내렸다. 붉어진 얼굴을 보자 서동수는 목구멍이 좁혀지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당분간은 믿을 만하겠어.”

“…….”

“남북한 연방이 친중화(親中化)되거나 중국령으로 합병되면 일본은 무력화(無力化)될 테니까.”

“…….”

“독도는 말도 꺼내지 못할 것이고 대마도를 무력 회수해도 미·일 동맹을 내세워 전쟁을 일으키지 못할 겁니다.”

서동수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하 사장, 난 장사꾼이오.”

“압니다.”

하선옥이 시선을 내린 채 대답했고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장사꾼은 항상 차선, 차차선의 대비책을 마련합니다. 올인은 도박사들이나 하는 거요. 수백, 수만 명 임직원과 수십만 가족의 생계가 달려 있는 사업장은, 곧 국가의 축소판 같습니다.”

서동수가 이번에는 하선옥의 가슴을 보았다. 우연이었는데, 그 시선을 느낀 하선옥이 목을 움츠렸지만 가슴이 줄어들 리는 없다.

“모든 경우를 예상해야 될 겁니다. 결코 평탄한 여정이 아니오. 잘 아시다시피 여론은 얇은 냄비 같고 언제 바뀔지 모릅니다. 흙탕물에서는 내가 흙탕물을 뒤집어 쓰고 고기를 잡아야 됩니다.”

“…….”

“하선옥 씨가 내 특사로 푸틴을 만나고 오세요.”

그때 숨을 들이켠 하선옥이 서동수를 보았다. 이제는 젖가슴도 잊고 목이 펴졌다.

“푸틴을요?”

“만나서 오늘 더글러스한테 들은 이야기를 해요. 내가 전하라고 했다고.”

“그, 그렇게만 말하면 됩니까?”

“대한연방이 러시아와 동맹을 맺고 싶다고 전해요. 그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 진작부터 생각했다고.”

“알겠습니다.”

“그럼 푸틴이 미국하고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겠지.”

“당연하죠.”

“미국과도 동일한 조건으로 동맹을 맺을 것이라고 전해요.”

“알겠습니다.”

“정직하게 말해야 돼요. 이런 경우에는 잔재주를 부리면 안 돼.”

그러고는 서동수가 길게 숨을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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