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 / 에멀린 팽크허스트 지음, 김진아 권승혁 옮김 / 현실문화
“가족의 절반인 여성이 이 세상에서 자유를 얻을 수 없다면 진정한 평화는 존재할 수 없다.”

여성운동계의 잔다르크 팽크허스트는 ‘집안의 천사(Angel in the House)’로 명명된 빅토리아 시대 전통적인 여성상을 깬 인물이다. 그는 여성참정권 운동가 그것도 전투적이고 격렬한 운동가였다. 마흔넷이던 1902년 여성 참정권 운동단체인 여성사회정치연합(Women‘s Social Political Union)을 만든 그는 1908년 ‘전투파’를 선언하고 전투적 전략을 택한다. 총리관저에 돌을 던지고 정치인의 집을 습격하고 우체통에 불을 질렀고 단식 투쟁을 벌였다. “인류 역사를 되돌아볼 때 정치적 진보는 언제나 폭력과 재산 파괴 행위와 더불어 가능했기에 불가피하게 이런 전술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과격 발언도 삼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 같은 전략은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자의 선택이었다. 19세기 말 영국 여성은 법적 사회적으로 권리를 갖지 못한 채 남편의 소유물이자 재산이었다. 자녀와 자신이 번 돈에 대해서도 권리를 주장할 수 없었다. 남편이 아내의 목에 밧줄을 감고 시장으로 끌고 가 팔아넘기던 시대였다. 상황은 조금씩 나아져 1872년 전국 여성참정권협회 등이 결성되기도 했지만 1910년까지 영국 여성들은 정당에 가입할 수는 있지만 투표는 할 수 없었다. 정당활동은 해도 의원을 뽑을 수도, 의원직에 나갈 수도 없었다. 당시 여성 운동가들은 남성 정치인들이 여성 참정권 법안을 발의해줄 것이라고 굳게 믿고 그들을 설득하는 데 힘을 쏟았다. 남성 의원들은 관심을 갖고 공감한다고 말했지만 누구도 법안을 발의하지 않았다. 팽크허스트도 처음에는 이들의 선한 의지에 기대 공청회에 참석해 의회를 압박하고 위선적인 의원을 겨냥한 낙선 운동을 벌였지만 전혀 진전이 없자 노선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나는 거짓된 희망에 현혹된 적이 없다.” 이 말은 그가 왜 ‘전투파’로 나설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부연 설명이다. 권력을 가진 자의 호의를 기대할 수 없었던 그의 외침이다.
자서전 그 이후, 제1차 세계대전 후 팽크허스트는 딸 크리스타벨과 함께 여성당을 만들어 동일 임금, 평등한 결혼법, 부모로서의 동등한 권리, 동등한 취업 기회 등을 위해 애썼으나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1918년, 영국정부는 21세 이상의 모든 남성과 일정 자격을 갖춘 850만 명가량의 30세 이상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한다. 여성들이 전쟁 승리에 헌신한 공로가 인정되면서 여성 참정권에 우호적인 여론이 형성된 데다 또다시 극렬한 참정권 운동이 재개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로써 팽크허스트와 여성사회정치연합의 목표는 일부 달성됐다. 이후 그는 1926년 보수당이야말로 대영제국을 보호하고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여성을 위한 정의를 시행하며 공산주의에 저항할 것이라며 보수당에 가입해 1928년 보수당 국회의원 후보에 나서지만 그해 숨을 거둔다. 몇 주 뒤 보수당 정부는 21세 이상 모든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한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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