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창희 / 기초과학연구원 연구단장, 광주과학기술원 교수·물리광과학

기초과학은 자연에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에 대한 기초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지고 발전한 학문 분야로서, 인간이 만드는 새로운 현상에 대해서도 근본 원리를 밝혀 준다. 이 기초과학 분야에는 수학·물리학·화학·생물학 등이 있으며, 이는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역할을 한다. 기초과학에서 얻은 지식을 통해 응용과학이나 공학 분야에서 새로운 산업을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튼튼한 기초과학 위에서 발전한 산업은 국가 발전에도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해외 석학 12명이 서울대 자연대학의 연구 경쟁력을 평가한 보고서에 대한 기사가 최근 보도됐다. 그들은 평가서에서 ‘세계 대학을 선도하는 명문대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면서, 이미 많은 연구자가 진행하고 있는 분야에 뛰어드는 ‘따라하기 과학(me-too science)’을 연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미 많은 연구자에 의해 방법론이나 연구 장비가 개발돼 어느 정도 검증된, 유행하고 있는 분야를 연구해야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고, 연구 실적을 쌓는 데도 유리하다. 유행하고 있는 분야를 연구해야 연구비 경쟁이나 교수 승진 시 유리한 상황이니 연구 분야 선택에서 대부분은 유행을 좇아간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定理)를 증명한 앤드루 와일즈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6년 동안 칩거하며 이 문제에만 매달려 300년 이상 된 난제를 해결했다. 한국에서 단기간에 아무런 연구 성과가 나오지 않는 모험적인 연구에 매달리는 교수가 있다면 무능 교수로 퇴출됐을 것이니, 따라하기 과학의 유혹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즉, 평가서에서 지적한 것은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모험적인 연구를 하는 교수가 안 보인다는 말이다.

기초과학 연구는 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접근해야 한다. 최근 물리학계에서 세기의 발견으로 간주되는 중력파 검출은 1980년대부터 시작한 연구의 결실을 이제 보게 된 경우다. 한쪽 팔이 4㎞인 거대한 간섭계의 건설을 위한 제안·설계·제작에 20년이 걸렸으며, 1999년 중력파 검출을 위한 1차 시설이 완성돼 10년 동안 중력파를 측정했지만 검출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 시설에 대한 성능 검증이 되어 1차 시설보다 측정 감도를 10배 향상시킨 2차 시설이 5년 뒤 완공되자 곧바로 중력파 검출에 성공해 지난 2월 중력파 측정에 대한 정식 보고가 미국에서 있었다. 30여 년의 노력에 대한 결실로 중력파 천문대를 이용한 미지 우주를 관측하는 새로운 방법이 등장한 것이다.

이러한 거대한 시설이 아니라 할지라도 장기간에 걸쳐 모험적인 연구를 하려고 할 때, 우리가 이를 허용하는 포용력이 있고 그 결실을 볼 때까지 오랫동안 기다릴 수 있는 여유가 있는지를 이제는 우리 스스로 물어볼 때가 됐다.

기초과학은 사막에 씨를 뿌려 나무를 키우는 것과 같아서 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이에 대해 꾸준히 투자하면, 사막에서 자라는 나무가 뿌리를 아주 땅속 깊이 내려 튼튼히 자라는 것처럼 세계에 우뚝 서는 기초과학의 토대를 마련할 것이다. 또, 이를 기반으로 산업의 발전을 이루는 근간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초과학을 제대로 발전시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는 기초과학의 튼실한 토대를 마련해야 ‘따라가기 과학’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아무도 해보지 않은 모험적인 연구에 거리낌 없이 뛰어들어 새로운 과학의 지평을 개척함으로써 세계에 우뚝 서는 우리의 기초과학을 세워나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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