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르탱, 색채의 가치 극대화
마리아니, 직물의 광택 표현
기우디체, 탁하면서 선명한 빛
해외의 모노크롬 작품들은 종종 ‘단색화’로도 번역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단색화는 모노크롬으로부터 출발했지만 다른 길을 걸어갔다. 단색화에는 우리 고유의 정신성이 담겼다. 그러면 관객들에게는 어떻게 다르게 비칠까. 한국의 단색화를 연상시키지만 일견 다르기도 한 외국작가의 모노크롬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가 잇달아 열리고 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모노크롬 화가 베르나르 오베르탱(1934∼2015)의 국내 첫 개인전이 서울 종로 자하문로에 있는 리안갤러리에서 지난 8일 시작됐다. 오베르탱은 1960년대 독일 아방가르드 예술단체 ‘제로그룹’ 일원으로 활동했다.
1958년부터 붉은색 모노크롬 회화를 그린 오베르탱은 “붉은색은 그 자체에 내재한 빛을 통해 추상의 감정을 극명하게 불러일으킨다”고 말한 바 있다. 갤러리는 “회화의 표면 위에 드러나는 색상, 재료의 물질성과 순수성을 강조하는 예술 탐구를 이어간 화가”라고 오베르탱을 소개했다.
오베르탱은 1957년 ‘청색 모노크롬 화가’로 통하는 이브 클랭과의 만남을 통해 어떠한 환영적 요소 없이도 단색을 통해 온전한 물질성과 정신성의 감각을 구현할 수 있다는 영감을 받게 된다. 이후 오베르탱은 모노크롬 회화가 선, 형태, 구조와 같은 구상적 요소를 철저히 무력화시키며 진정한 회화의 본질을 드러내는 유일무이한 세계임을 강조했다. 또한 단색은 색채의 절대적 가치를 유지시키는 것으로 모노크롬 회화를 통해 이 가치가 완전히 실현된다고 보았다. 정신성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한국의 단색화와 거의 흡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전시에선 그의 대표작으로 통하는 레드(Red) 페인팅 시리즈 외에 바이올린, 책과 같은 일상적 오브제나 금속 표면 위에 일정하게 꽂힌 성냥에 불을 피우고, 화염 이후 남은 잔재와 흔적을 이용한 퍼포먼스 성향의 추상 작업도 선보인다. 전시는 4월 23일까지.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의 오페라갤러리에선 ‘이탈리안 모노크롬, 실험적 표면’전이 열리고 있다. 이탈리아 아방가르드 작가들은 캔버스에 글을 쓰고 지우는 반복적 행위 등 창작의 행위와 과정을 작품에 포함시켰다. 또한 시각적, 시적 효과를 극대화한 조형 언어를 제시한다.
4월 13일까지 계속되는 전시에서는 혁신적인 아방가르드 회화를 추구한 이탈리아 중견작가인 알렉산드로 알가르디, 움베르토 마리아니, 마르셀로 로 기우디체 등 3인의 모노크롬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알레산드로 알가르디(71)는 글 쓰는 행위와 재료와의 유동적인 관계를 표현한 작품을 통해 시각적 변형을 보여주는 시적 효과를 창조한다. 작가는 문장들이 무의미한 형태로 변형되어 본래의 언어적 의미를 잃고 하나의 서도화(calligraphy)가 되는 시각적 변형을 통해 개념적 사고를 이끌어 낸다.
움베르토 마리아니(80)는 옷감이 빛에 민감하게 반응해 광택과 패턴이 만들어지는 현상에 주목하고, 주름 잡힌 직물의 유동적인 특성을 작품에 표현한다. 캔버스 위에 접힌 천의 주름은 빛과 그림자의 패턴을 만들어내고, 사물에 내재된 비밀스러운 측면을 관람객에게 상상토록 한다. 또 색과 매체의 화학작용을 자유자재로 실험한 결과물인 로 기우디체(59)의 모노크롬 단색 작품들은 탁하면서도 선명하고, 흙같이 어두우나 동시에 화려하게 빛을 낸다.
한국의 단색화를 세계에 처음 알린 윤진섭 시드니대 미술대 명예교수는 “모노크롬과 단색화는 일견 유사해 보이면서도 분명히 다르다”며 “예외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서구의 모노크롬 회화가 색채와 물성에 주목했다면, 한국의 단색화는 수행성, 정신성, 반복성을 통해 물성(物性) 너머의 세계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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