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4세 11개월때 콩쿠르서 1등
서울대 음대 최연소 교수 화제
10년전 교수직 내놓고 뉴욕行
“보모로 피아노 전공생 만나
하루종일 피아노 치면서 놀아”
뮤직+인사이트 시리즈 첫 공연
시낭송까지 곁들인 ‘시와 사계’
“성찰의 계절 가을, 맨앞에 배치”
“지난 10년간 엄마 역할에 집중했어요. 또 운명처럼 피아니스트의 길로 들어선 제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도 가졌죠.”
만 4세 11개월 때 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한 후 47년간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화려한 길을 걸어온 백혜선(51) 클리블랜드 음악원 교수는 “후회할 수도 없는 숙명 같은 삶을 살아왔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오는 23일 서울 서대문구 금호아트홀연세에서 ‘시(詩)와 사계(四季)’라는 제목으로 피아노 독주회를 연다. 이번 연주회는 금호아트홀연세가 음악과 문학, 영상, 무용 등을 연결해 기획한 ‘뮤직+인사이트’ 시리즈의 첫 번째 공연으로 백 교수가 피아노 연주와 함께 시낭송을 한다. 미국 뉴욕에 거주하고 있는 그가 국내에서 독주회를 여는 건 지난 2013년 이후 3년 만이다.
1989년 미국 메릴랜드 윌리엄카펠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무대에 진출한 그는 1994년 세계 3대 클래식 경연으로 꼽히는 러시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1위 없는 3위에 오르며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1995년 29세 때 서울대 음대 최연소 교수로 임용되며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2005년에는 돌연 서울대 교수직을 내려놓고 뉴욕으로 떠나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2013년부터 클리블랜드 음악원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여러 콩쿠르의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14일에도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열린 힐턴헤드 국제 피아노 콩쿠르 심사를 마치고 현지 시간 늦은 밤에 문화일보와 전화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요즘 한국 학생들이 거의 모든 콩쿠르 결선에 오른다. 힐턴헤드 콩쿠르에서도 결선에 오른 세 명 중 두 명이 한국인”이라며 “음악인들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한국 젊은 세대들의 활약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이번 연주회 1부에서 백 교수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과 차이콥스키 ‘사계’ 중 1·3·4· 6월, 리스트 ‘순례의 해 제2년:부록, 베네치아와 나폴리’ 중 타란텔라 등을 연주한다. 또 2부에서는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을 들려준다. 그는 “아무래도 국내에서 연주를 할 때는 책임감이 더 크게 느껴진다”며 이번 독주회의 특징을 설명했다.
“러시아 시 ‘화롯가에서’ ‘종달새의 노래’ ‘아네모네’ ‘뱃노래’ 등을 낭송한 후 시와 연결된 차이콥스키 곡을 연주해요. 차이콥스키가 곡을 먼저 썼고, 출판사 편집장이 곡에 맞는 시를 붙였다고 해요. 베토벤 ‘월광’에 맞춰 낭송할 시는 아직 정하지 않았어요. 어떤 시를 읊을지 기대하세요(웃음). 어린 시절부터 시를 좋아했어요. 그러다 미국에서 러셀 셔먼 선생님께 배울 때 문학, 과학 등을 공부했어요. 선생님은 항상 마음과 머리가 열려 있어야 음악을 통해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하며 레슨 때 꼭 에세이 한 편을 써오라고 하셨죠.”
보통 사계는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열하지만 이번 연주회에서는 가을로 문을 연 후 겨울, 봄, 여름 순으로 이어진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순서는 왠지 점점 어두워지는 느낌이 들어요. 가을은 자신을 돌아보며 뭔가 채울 수 있는 계절이라고 생각해서 가장 먼저 배치했어요. 또 가을에 음악을 많이 듣잖아요. 차이콥스키 사계 중 ‘10월’을 첫 곡으로 연주하려다 러시아 곡만 하면 지겨울 것 같아 베토벤 ‘월광’을 선택했어요. 그리고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나면 희망적인 봄과 여름이 오잖아요. 희생되고 죽어가도 다시 필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았어요. 제가 좀 낙천적이에요(웃음).”
그는 ‘인생의 가을에 서 있는 것도 작용했느냐’고 묻자 바로 “당연히 그렇다”고 답하며 환하게 웃었다. “다시 봄과 여름을 맞이해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싶어요. 저는 선택의 여지 없이 피아니스트의 길로 들어왔어요. 어머니가 바쁘셔서 제게 대학생을 붙여줬는데 하필 피아노 전공자여서 하루 종일 피아노만 치게 했어요(웃음). 제가 어렸을 때 좀 바보 같았어요. 순하고 느렸죠. 그래서 사람들 눈에 잘 안 띄는 아이였어요. 근데 피아노만 치면 사람들이 저를 보는 눈이 달라졌어요. ‘내가 피아노를 안 치면 나를 봐주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에 열심히 했어요. 미국에 와서는 아이들 키우는 데 전념했어요. 아들이 14세고 딸아이가 13세인데 다 키운 줄 알았더니 이제 시작이네요. 한국이나 미국이나 대학 보내는 건 지옥이에요(웃음). 아이들을 조금 부족하게 키우려고 해요. 그래야 하고 싶은 게 많아지는 것 같아요.”
대구가톨릭대 음대 석좌교수와 부산국제음악제 음악감독 일도 하고 있는 백 교수는 내년에 의미 있는 독주회를 열 계획이다.
“지방도시들이 많이 발전했지만 문화는 아직도 서울에 집중돼 있어요. 그래서 고향인 대구에서 매 학기 음악 학도들과 만나고, 부산국제음악제를 지역 특색에 맞게 꾸리고 있어요. 재작년부터는 대구가톨릭대가 클리블랜드 음악원과 복수학위 협정도 체결했고요. 나이가 들며 하고 싶은 일이 점점 많아져요. 뭔가 지나칠 수 없는 일이 제게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언제,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죠. 일단 내년에는 제 음악 인생을 담은 독주회를 열려고 준비 중이에요.”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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