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철수의 새정치 실험이 어려운 상황에 이른 것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다. 좀처럼 중용(中庸)적인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흑백논리식 사회문화가 많이 작용했다. 거대 양당의 음험한 공생구조 속에 제3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안철수와 그 무리를 싸잡아 ‘벚꽃(사꾸라) 세력’으로 내모는 한완상류의 주장이 그렇다.
물론 지금의 추락은, 안철수 본인의 정치적 미숙함과 새정치의 정체성을 살리지 못한 자기부정 행보와 깊은 관련이 있다. 안철수에게 오랫동안 정무적 판단을 건의하고 헌책(獻策)해온 한 인사는 기자에게 “설계도도 없이 건물을 지으려 했던 것 같다”고 안철수의 준비되지 않은 면모를 지적했다. 중앙당 창당 한 달 반이 지나도록 교섭단체 만들기에 급급한 대신, 기성 정치권에 혐오를 느껴 갈채와 환호를 보냈던 지지자들을 확실히 붙잡아줄 특별한 무엇을 보여주거나 설득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분별력 있는 협치(協治)를 통해 원내 제3당의 필요성과 힘을 보여줄 기회를 여러 차례나 날렸다. 감동적인 정책 제안도 없었다. 그 사이에 제1 야당 대표로 영입된 김종인의 거침없는 물갈이와 현란한 레토릭, 발 빠른 ‘야권 통합 프레임’에 걸려들어 당은 흔들렸고 지지층은 떠났다.
그렇다면 안철수는 또다시 포기해야 할까. 그렇지 않다. 그가 옳다고 여겼던 가치가 여전히 ‘아직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이뤄내야 할’ 상미(尙未)의 존재로 남아 있다. 정치판의 개조를 내용으로 하고, 양당체제 극복을 형식으로 하는 새정치라는 가치다. 누가 하든 해야 할 일이다. 새누리당의 난장판 공천 쇼는 우리 정치판이 왜 이 지경에 이르렀고, 왜 새정치가 필요한지를 말해준다. 대통령에게 쓴소리·바른말 하다 찍힌 특정 인물과 계파를 도륙(屠戮)하는 구태가 난무한 여당 행태는 왜 대한민국의 정치가 새로워져야 하는지에 대한 웅변이다. 제1 야당이 혁신을 부르짖고 특정 계파 순혈주의와 패권주의 청산에 착수할 수 있었던 것도 실은 안철수 탈당 이후 불어닥친 새정치 바람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나온 ‘의도하지 않은 결과’였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안철수가 꿈꾸었던 새정치 실험이 미완으로 끝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주저앉거나 뒤로 돌아가기를 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새정치가 여전히 시대정신이라는 점, 기존 양당 정치체제 속에서는 시대정신을 구현할 그 어떤 시도도 있기 힘들다는 점 때문이다. 여당은 여전히 구리고 야당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 적지 않은 유권자들은 정치적 무관심 혹은 합리적 무지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친노(친노무현)가 정권을 빼앗든 친박(친박근혜)이 정권을 재창출하든 별로 관심이 없는 것이다. 이 지점에 합리적 진보와 보수를 아울러 제3의 정당을 만들라는 국민의 갈망이 있다.
이번 총선이 안철수로서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야권통합론이나 연대론에 한눈을 팔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다. 총선 전에 교섭단체를 구성하겠다고 정력을 낭비하지도 말라. 옥쇄를 각오하고, 오직 새로운 정치 만들기에 신명을 바쳐야 할 때다.
minsk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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