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강흠 / 연세대 교수·경영학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지난 200년 동안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부(富)와 소득의 불평등이 심해졌다고 주장했다. ‘세습’ 자본주의의 폐해를 꼬집은 것이다. 그런데 최근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가 포브스의 억만장자를 분석해 내놓은 보고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신흥국과 선진국 모두 자수성가(自手成家) 부자의 비중이 늘고 상속부자는 줄어들었다고 한다. 1996년 44.7%였던 자수성가 부자가 2014년에는 거의 70%를 차지했다. 피케티의 주장도 벌써 옛 이야기가 된 셈이다.

한데, 우리나라는 상속부자가 훨씬 많아 억만장자 중 자수성가 부자는 26%에 불과하다. 자수성가 부자가 98%인 중국은 시장경제의 역사가 짧아서 그렇다 치더라도 미국의 71%나 일본의 81%, 유럽의 64%는 선진국들이 도전과 혁신의 끈을 놓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우리도 경제의 역동성을 잃지 않으려면 창업부자가 많이 나오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상속부자라고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 상속부자는 전대(前代)의 피땀 어린 노력의 산물이니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상속부자마저 없었더라면 국가 경제는 거의 피폐해졌다고 봐야 한다. 사업의 영속성 측면에서도 상속을 통한 가업 승계는 중요하다. 다만, 부의 대물림에 그치지 않고 창업자의 기업가 정신도 물려받아서 개인만 아니라 사회에도 보탬을 주겠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상속부자는 혹독한 경영 수업으로 검증받아야 하며 험난한 환경에서도 기업을 일으킨 창업자의 도전 정신을 품어야 한다.

어쨌든 창업부자가 적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젊은이들이 안정적인 직장만 찾고 창업 정신을 고갈시킨다면 정말 큰일이다. 젊은이가 도전 정신을 잃은 국가의 미래는 암울하다.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브랜드 3위인 삼성을 이뤄낸 상속부자 이건희 회장도 도전 정신으로 무장한 고 이병철 회장이라는 창업부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국내 창업기업 수는 160만 개를 넘어서 꾸준히 늘고 있지만, 창업 동기가 취직의 차선책이거나 퇴직 후 호구책이라면 창업부자의 탄생과는 거리가 멀다.

한편, 창업하기 어려운 경제·사회 환경도 개선해야 한다. 창업을 해도 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와 취약한 자본시장으로 인해 창업자금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벤처캐피털 규모는 3조 원에도 못 미쳐 미국의 40분의 1, 중국의 2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그마저 초기 단계에서 투자를 이끌어내기는 더욱 어렵다.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을 도입하고 예탁결제원이 핵심 인프라 역할을 하는 등 노력의 흔적은 있지만, 법안 발의 후 2년이나 걸린 것은 흠이다.

금수저, 흙수저 타령만 할 게 아니라 우리나라를 기회의 땅으로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창업과 혁신의 붐에 맞춰 규제를 획기적으로 완화할 필요가 있다. 스타트업으로 떠오르는 공유 경제에 규제 개혁의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면 에어비앤비나 우버와 같은 아이디어가 창업부자로 연결되기는 어렵다. 취업 학원으로 전락한 학교교육에 체계적인 창업 시스템을 구축하고 법과 제도라는 사회적 인프라도 기술 혁신의 속도에 맞춰야 한다. 구태의연하고 고답적인 자세로 옛날 얘기만 하다가는 창업 의욕마저 사라질 것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나라다. 놀이터만 잘 만들어주면 기업가 정신으로 창업의 도전과 아이디어가 충만해 앞으로 수많은 창업부자가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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