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주 서울대 교수
권혁주 서울대 교수
총선자문委 공천평가① 정당의 책임정치 실종

새누리, 승리 기정사실화
정책부합 후보 검증 못해

더민주, 진영 등 입당시켜
黨정체성 혼란만 부추겨

국민의당, 제3당 구호 뿐
‘이삭줍기’로 기대 못미쳐

배신·변신 난무‘派黨논리’
권력위한 정치싸움만 횡행


아직 몇몇 지역구와 비례대표 후보의 공천이 남아 있지만, 4·13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여야 정당들이 지난 한 달여 진행한 공천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19대 국회가 제 몫을 하지 못해 국민들의 지탄을 받아온 터라 새로 선출할 20대 국회에 거는 국민적 기대와 요구가 막중한 데 비해 이번 공천과정에서 정치권이 보여준 모습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유능하고 최선을 다하는 후보를 내세워 국민적 지지와 정당성을 확보하는 정치 본연의 사명은 외면한 채 오직 권력을 향한 정치 싸움에만 몰두했다. 민주주의에서 꼭 필요한 정당의 책임정치는 실종된 채, 의리와 배신 그리고 변신으로 점철된 파당(派黨)의 논리로만 공천과정이 설명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19대 국회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대책, 경기회복을 위한 경제개혁 등 산적한 과제를 효과적으로 처리하지 못한 채 정치적 대립과 파행으로 얼룩져 국민적 실망을 불러일으켰다. 정부도 국회와 소통하고 협력하기보다는 밀어붙이기식으로 개혁입법을 추진하여 국회와 대립만 초래한 측면도 없지 않다. 국회 선진화법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가진 야당은 정부의 개혁안을 번번이 좌절시켰고, 예산심의 과정에서 여야 의원들은 쪽지 예산을 남발했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정부를 비판했던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인 유승민 의원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사퇴의 변을 남기고 원내대표 자리를 물러나는, 청와대와 여당 원내대표가 공개적으로 대립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 같은 19대 국회의 행태로 인해 이번 총선을 앞두고 정당들이 깨끗하고 참신한 후보자들을 공천하여 국회를 새롭게 물갈이를 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번 공천과정에서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이 보여준 모습은 이러한 국민적 희망과는 전혀 동떨어진 것이었다. 각 당 공천관리위원회는 후보자 면접, 여론조사, 전략적 고려에 따라 후보자를 공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공천은 친박(친박근혜)·비박(비박근혜)·반박(반박근혜) 등 계파 간의 힘겨루기를 통해 친박계의 우위 속에서 친김무성계의 선전, 친유승민계·친이명박계 후보자들의 대거 낙천으로 귀결됐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신청한 대구동을 지역구는 여전히 공천 결정을 미루고 있다. 당에 부담을 주지 말고 스스로 떠나라는 뜻처럼 보인다. 계파 싸움의 와중에서 새누리당이 국민에 제시할 미래전략이나 정책에 부합하는 사람을 공천했다는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 새누리당은 콘크리트 지지층과 야당의 분열로 이미 총선승리는 떼놓은 당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더민주는 총선을 앞두고 친노(친노무현)·비노(비노무현) 진영 간의 계파 싸움으로 당의 지지도가 떨어지고 급기야 국민의당이 창당되자,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김종인 씨를 대표로 영입했다. 김 대표는 경제민주화라는 브랜드와 독특한 뚝심으로 당을 장악하여 공천권을 행사하고 있다. 민주화 운동으로 잔뼈가 굵은 정책통 이해찬 전 총리를 낙천시키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목소리 높은 친노 진영의 의원들이 공천권의 칼날 앞에 숨죽이고 있는 사이 여당 공천에서 제외된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용산 지역구에 공천을 하고 선거대책위원회에 중책을 맡기기로 했다. 김종인, 진영 두 사람이 누구인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를 위해 국민행복추진위원장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던 사람들이다. 중도를 포용하는 정치공학적 고려라 해도 이 당이 더민주인지 새누리당인지 국민들은 당 정체성의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정체성이 어찌 되었든 일단 총선에서 이기고 보자는 전략이다. 총선이 끝나면 숨죽이고 있던 친노 진영이 다시 당권을 탈환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그렇지만 김종인 대표가 쉽게 물러설 것 같지는 않다. 이번 더민주 공천의 백미는 그가 비례대표 2번을 스스로에게 낙점했다는 사실이다. 급기야 더민주 중앙위원회의 즉각적인 반발을 초래했지만, 앞으로도 더민주의 진영 간 긴 정치 싸움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새 정치를 기치로 창당한 국민의당은 여전히 뚜렷한 정체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더민주에서 탈당한 의원들을 이삭줍기식으로 모아 새 정치가 탄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민의당이 해야 할 역할은 양당이 대변하지 못하는 국민적 요구와 미래지향적 변화를 이끌어 낼 새로운 제3당이지만, 아직도 그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국민의당이 숙의배심 경선이라는 제도를 도입하여 후보들이 자신의 정책과 경륜을 두고 공개적으로 경쟁한 것은 돋보이는 시도이다.

사실 이번 공천과정에서 여야 정당이 보여준 약삭빠른 행태의 진수는 여론조사 경선이다. 표본추출 등 여러 가지 약점이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무조건 이기고 보자는 정당의 기본적 태도이다.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그에 맞는 정책을 제시하여 선택을 받기보다는 누구든 국민이 뽑아줄 사람을 공천하자는 것이 여론조사 경선의 기본적 사고다. 마치 시험을 앞둔 학생이 공부는 하지 않고 정답만 가르쳐달라는 것과 같다.

결론적으로 이번 공천과정을 지켜보면서 새롭게 물갈이를 해야 할 것은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국민은 아랑곳하지 않는 정당들도 물갈이를 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유권자들도 무조건 정당 기호만을 보고 투표할 것이 아니라 253개 지역구에 나선 후보들의 경륜과 능력을 꼼꼼히 따져 투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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