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 드리겠습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한 말이다. 얼핏 들으면 이 얘기는 분명 시대적 조류에 맞는 말 같다. 하지만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측면도 있다. 공천(公薦)이라는 것은, 선거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기 위해 정당이 담당해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즉, 대의민주주의 아래서 국민은 선거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지, 공천 과정까지 관여해서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사회 일각에서는 미국도 오픈 프라이머리를 실시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도 모든 지역에서 순수 오픈 프라이머리를 실시하는 것은 아니다. 순수 오픈 프라이머리를 실시하는 주(州)는 11개에 불과하다.
공천권은 정당이 갖고, 정당의 공천을 평가하고 심판하는 과정이 선거여야 하므로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것은 사실상 이중의 선거를 치르자는 말밖에 안 된다. 그래서 국민은 정치 개혁을 주장한 적은 많아도, 공천권을 돌려달라고 주장한 적은 좀체 없었던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상향식 공천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던 환경도 이해할 수 있다. 이른바 밀실 공천 문제 때문에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났고, 그래서 그 대안으로 상향식 공천이 떠올랐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상향식 공천이 민주주의의 완성이라고 볼 수는 결코 없다. 그 이유는 이렇다.
지금 각종 선거에서 투표율은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그래서 총선에서도 투표를 하지 않는 유권자가 공천 과정에서 여론조사에 적극적으로 응하기를 기대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를 뒤집어 생각해 보면, 국민 참여 경선이나 기타 다른 방식의 상향식 공천은 사실상 조직이 강한 후보가 유리할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실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여론조사 응답률이 3.3%인 곳도 있다고 한다.
또한, 여론조사는 추세를 나타내는 지표라고 할 수 있는데, 한두 번의 여론조사를 가지고 후보자의 당락을 결정한다는 것 역시 무리다. 특히, 오차 범위 내에서 후보자들의 당락이 갈릴 경우, 당선된 후보자와 탈락한 후보자 사이에 승복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설사 상향식 공천이 정치 개혁을 위한 올바른 방향이라고 하더라도, 현실에서는 그 본래의 취지를 살리기 어려운 경우도 많은 것이다. 결국, 어떤 제도를 시행하기 전에 우리의 현 상황을 면밀히 검토하고, 이를 토대로 부작용을 최소화할 방안을 찾은 다음 그 제도를 시행하는 게 옳았을 것이다.
물론 그래서 안심 번호제를 도입했다고는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뛰었던 일부 후보는 현행 안심번호제도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 경선에 불복하는 사태도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 즉, 공천의 불투명성과 공천 잡음을 줄인다는 명분으로 상향식 공천을 했는데, 오히려 공천 불복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는 말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상향식 공천을 어정쩡하게 하지 말고, 차라리 하향식이라도 공천 요소를 최대한 계량화하고 이 점수를 공개하는 방식도 고려해 볼 만하다. 특히, 이번의 경우 상향식 공천 과정에서 그 허상(虛像)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여론조사 로 데이터를 공개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투명성이 상향식 공천의 중요한 장점이라고 할 때, 로 데이터는 공개돼야 한다. 어쨌거나 이번 공천은 정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과정이었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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