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 만능주의 지적 일어
투표대체 보조수단 활용 경우
‘경선전화투표’용어가 더 적절
더민주 휴대전화응답 3%이내
여론조사 지역대표성 반영 의문
제도 평가위해 과정 공개 해야
유권자 전화 정치참여 낯설고
예비후보자 독촉 문자도 눈살
정당이 시행 전에 설명했어야
‘[Web발신] <속보> 경선 여론조사진행중! 02로 시작하는 번호! 꼭 도와주십시오.’ 경선지역의 많은 유권자들이 이와 유사한 문자를 받았다. 번호가 유출되었나? 정당의 공식 요청에 의해 이동통신사가 제공했다니 다행이다.
이번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공직선거법 제57조의8 당내경선 등을 위한 안심번호의 제공 조항이 처음 적용되었다. 사실 올 1월 15일 신설된 이 조항은 국민의 현실 정치 참여에 매우 큰 변화를 주었다. 하지만 이를 인지하고 있던 유권자는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정당이 당내경선을 위한 여론조사를 실시하거나 여론수렴이 필요한 경우 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하여 이동통신사업자로부터 이동전화 안심번호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것이 조항의 핵심이다. 각 당이 당내 경선선거인단의 대표성을 확보하고 경선 여론조사의 정확성과 신뢰성을 제고한다는 취지를 반영한 변화이다. 그런데 휴대전화를 통해 들어오는 후보자 정보와 요구 사항은 매우 낯설다. 과연 각 정당은 이런 변화를 유권자에게 설명하는 책무 이행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
이번 공천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각 정당이 국민경선, 상향식 공천의 정당성만 강조하며 국민과 소통하지 못한 채 경선 여론조사를 시행했다는 점이다. 제도를 만들었으면 이를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는 충분한 준비를 했어야 했다. 선거구획정 시일을 넘기며 촉박한 일정 속에 벌어진 각 당 내부의 헤게모니 전투 속에서 국민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휴대전화를 통해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지, 언제 참여할 수 있는지 그리고 참여가 무슨 의미를 갖는지 정당은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졸속 시행이었다. 오히려 게임에 참가하는 선수인 예비후보자가 다급하여 규칙을 설명하고 전화를 꼭 받아달라는 불쌍한 문자만 남발했다.
정당은 ‘공천권을 국민에게 드렸다’고 했는데 국민은 공천권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모바일 커뮤니케이션 장치의 보급과 이용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렇게 선거라는 공적 정치 영역이 휴대전화를 통해 개인적 영역으로 동시 다발로 깊숙이 들어온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긴급’, ‘속보’, ‘임박’을 알리며 예비후보자들의 문자가 날아들어 왔다. 사적 커뮤니케이션 도구인 휴대전화를 통해 투표와 같은 공적 참여를 요구받았다. 그런데 이러한 메시지는 신뢰 못할 주체로부터 발송되는 스팸문자처럼 보였다. 휴대전화로 정치참여의 경험이 없었던 대부분의 유권자에게 충분한 설명 없는 경선 여론조사 참여는 매우 뜬금없는 일이었다. 왜 내가 특정 정당의 국민선거인단의 일원이 되어야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정당은 다양한 사회 채널을 통해 국민에게 설명했어야 했다. 우리 정치 현실상 정당과 국민 간의 괴리가 크기에 더더욱 필요한 일이었다.
제도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이해 없이 시행된 경선 여론조사는 향후 이 제도의 실행과 관련하여 생각해 볼 이슈를 남겼다. 특히 여론조사가 지역 대표성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지는 심각한 문제 중 하나다. 여론조사의 틀을 토대로 투표 행위와 같은 제도를 추진하는 것은 표본의 대표성과 조사의 정확성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 공개한 경선 여론조사의 응답률이 3% 내외에 그친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전제를 충족시킬 수 있을지 대단히 회의적이다. 후보자선정 기준으로 제시한 당선가능성이 곧 지역대표성인데 이런 기준을 과연 충족시킨 결과로 보아야 할지 난감하다. 기준으로 정했으니 참여한 예비후보자들은 일단 승복한 셈이다. 그러나 이렇게 낮은 응답률 속에 선정된 후보가 과연 실제로 당선가능성이 더 높은지, 제대로 지역대표성을 갖고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제도에 대한 평가를 위해 조사 과정과 결과는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할 것이다.
정당의 역할도 고민스럽다. 당 정체성과 상관없이 유권자의 호감도가 유일한 후보 선정 요인이 된다면 정당은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걱정된다. 경선 여론조사 관리가 공천에서 정당 역할의 전부는 분명 아닐 것이다. 물론 경선 여론조사는 현실적인 효용성이 있다. 지난 선거의 국민참여경선 과정에서 발생했던 선거인단 모집의 과열 경쟁과 동원의 문제, 막대한 비용 발생의 문제 등은 어느 정도 피했다고 본다. 계파 간 대립의 붕당정치를 해소하기 위한 타협 기준으로 여론조사가 사용될 수밖에 없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또한 많은 지역구에서 실시되는 국민경선을 제한된 시간에 끝낼 수 있다는 현실적인 부분도 인정한다. 그러나 현실적 효용성에 안주하여 여론조사 만능주의에 빠진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피하기도 어렵다. 경선선거인단을 대체할 예외적 조항인 여론조사가 원칙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당의 전문성, 당원들의 선택, 유권자의 선호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경선방안의 논의가 시급하다.
차제에 ‘경선 여론조사’라는 용어에서 ‘여론조사’는 뺄 것을 제의한다. 일상의 여론조사에서 유권자의 지지율 차이가 오차 범위 내에 머물면 ‘승리’가 아니라 ‘경합’으로 분류한다. 불완전한 정보인 표본의 통계치를 통해 확률을 기초로 모집단의 지표를 추론하는 것이 바로 여론조사다. 따라서 경선 기간 투표 대체 보조 수단으로 활용되는 조사는 여론조사 대신에 ‘경선 전화투표’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더 적절하다.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가 관장하는 선거여론조사와는 그 정치적 활용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비후보자 간 논리적 설득이나 타협을 통한 후보 선출이 사실상 불가능한 우리 정치문화에서 유일하게 서로 승복할 규칙으로 자리한 것이 여론조사 방식이다.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의 단일화가 여론조사가 아니라 대타협으로 이뤄졌다면 어땠을까?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헌법에 명시되어 있고 ‘공천권을 국민에게 되돌려 드린다’는 슬로건은 매우 민주적으로 들린다. 각 정당이 추진한 ‘전화 민주주의’가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했는지는 현재로서는 부정적이다. 국민과 소통 없이 던져 놓은 제도 앞에 유권자 눈에 들어온 것은 치열한 계파 갈등이었다. 국민의 마음에 정당은 자리 잡지 못한 가운데, 실시된 경선 여론조사는 그저 ‘민의 반영’이라는 명분상의 구색 맞추기에 그쳤다는 평가에 만족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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